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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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아보는 데서 쉽지 않은 일 가운데 하나가 시기 구분이다. 정치권력의 변동을 기준으로 잡으면 이해가 쉽긴 하지만 내적인 논리가 취약한 경우가 적잖다. 이와 관련해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생각해볼 만한 사고 틀을 제공한다(<헌법>). 착안점은 ‘집단적으로 헌법에 관한 질문이 제기된 시기’다. 1948년, 60년과 61년, 87년, 2008년이 이에 해당한다. 각각 제헌, 4·19혁명과 군사쿠데타, 6월민주항쟁, 촛불집회와 얽혀 있다. 이들 시기에 국민은 ‘헌법의 본질’을 물었으며, 그것은 결국 권력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것이었다. 미국의 국제정세 분석가인 조지 프리드먼은 미국사를 다섯 시기로 나눈다(<100년 후>). 각 시기는 50년 안팎의 폭을 가지며, 새 계급과 경제모델이 기존 모델과 지배계층을 제치고 등장해 다음 모델·계층에 자리를 내주는 때까지 유지된다. 첫번째 주기(1776~1828년)에는 ‘건국의 아버지들’에서 서부개척자로 사회 주도 계층이 바뀌고, 이 개척자 사회는 ‘소도시 미국’으로 전환함으로써 두번째 주기를 마무리한다(1876년). 세번째 주기(1932년까지)에는 산업도시의 노동자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며, 네번째 주기(1980년까지)에선 서비스 중심의 교외로 권력이 옮겨간다. 2020년대 후반까지 이어질 다섯번째 주기에는 영구 이주자 계층이 대세를 장악해나간다. 미국의 경우엔 각 시기의 전환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뤄진다. 반면 민주주의 발전이 지체된 우리나라에선 시기 구분과 주도 계층의 교체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프리드먼 방식으로 우리 현대사를 나누더라도 1960년과 87년이 분기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1945년부터 60년까지는 독립과 국가 정체성 확립 노력에서 생존으로 사회적 관심의 초점이 바뀐 시기다. 이후 60년에서 87년까지는 사상 최대·최고 규모로 인구와 지역의 재편이 이뤄진다. 가장 큰 변화는 7 대 3 정도였던 농촌과 도시 인구의 비율이 3 대 7로 역전된 것이다. 곧 도시로 향하는 이주민들의 동력이 경제·사회·정치 등을 움직인 ‘국내 이주민의 시기’다. 이들의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일자리와 주거를 제공하는 일은 당시 최대 과제였고, 그 외적인 표현이 바로 산업화와 민주화다. 그 뒤 지금까지는 1970년대 이후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의 발언권이 커가는 시기다. 이전의 국내 이주민과 대비시켜 ‘도시민’ 또는 ‘시민’이라고 할 이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고 다수가 외국 경험을 가진 ‘지식 세대’이자 ‘열린 세대’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와 실업난으로 고통받으면서도 2008년 촛불집회와 2002년 월드컵 때 자신의 힘과 정체성을 보여준 바 있다. 끊임없이 도시로 인구가 몰리는 시절에는 부동산이 부의 근원이 된다. 지대를 추구하는 삽질경제는 이 시기의 산물이다. 반면 시민의 시대에는 수준 높은 지식과 창의적인 문화가 핵심이 된다. 이를 뒷받침할 좋은 교육과 개방적인 분위기, 시민적 삶을 골고루 보장할 보편적 복지와 국토 균형발전 등이 필수요소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일 취임 두돌을 맞는다. 지금 정부의 행태가 시민의 시대에 부응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합의와 합리성보다 지시와 공작정치를 선호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지가 못하다. 두 해 전 촛불세대가 제기한 헌법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묻는다. 당신들의 권력이 정말 정당한가라고. 이들의 질문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그 시점은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오는 6월일 수도 있고 다음 대통령 선거 때가 될 수도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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