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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3 18:55 수정 : 2010.05.23 18:55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북한이 정말 천안함을 공격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제 어뢰의 프로펠러 등 추진모터와 조종장치는 좋은 증거가 된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의 표현처럼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쪽 소행임을 확언하려면 북쪽의 의도·동기와 실행 능력·방법에 대한 정보가 폭넓게 뒷받침돼야 한다. 아직은 많은 것이 안갯속이다. 이제까지 확보된 증거로 판단할 때 북쪽 소행일 가능성은 70% 정도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단을 피하면서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게 책임있는 자세다.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감정에 휩쓸리기 쉽고, 빠른 결단을 앞세우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대표적 사례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이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 타임스>는 침공 1년2개월 뒤인 2004년 5월, 침공 이전과 전쟁 초기 기사에 문제가 많았다며 사설 등을 통해 자기비판을 했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 핵개발과 관련해 근거가 부족한 정보를 제공했으나 검증에 소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라가 그릇된 방향으로 가도록 방치했다는 반성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상식적으로 볼 때,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처 방향이 그렇게 복잡할 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침몰원인 규명이다. 벽돌을 쌓듯이 관련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다 보면 진실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응책 수립과 추진은 이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로, 단순한 응징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는 상황의 근원적 개선을 꾀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축은 구멍 뚫린 안보 대비태세의 총체적 점검과 재구축이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실제 진행은 이렇게 되지 않았다. 우선 침몰원인 조사는 정부가 정한 일정에 맞춰 급하게 이뤄졌다. 조사결과 발표는 6·2 지방선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20일로 잡혔고,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다음날 대북 대응책을 발표한다. 철저하게 선거에 맞춘 일정이다. 천안함에서 유실된 가스터빈실은 조사결과 발표 하루 전에야 인양됐다. 쌍끌이 어선이 발표 불과 며칠 전에 우연히 어뢰 프로펠러 등을 건져 올리지 않았더라도 북쪽 소행이라는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안보의 정치화다.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대북 초강경 대응책들도 합리성·실효성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 정부가 상정하는 목표는 북한의 굴복이다. 이전부터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기댄 대북 봉쇄를 추구해온 정부는 이를 더욱 전면화하려 한다. 나아가 국제사회가 강경대응을 지지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북쪽이 무릎을 꿇을 거라는 기대를 국민에게 불어넣는다. 이런 과정 자체가 보수세력의 동력화와 선거 승리 등을 고려한 정치적 행위다. 과거 정권들이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안보의 정치화는 부메랑이 돼 정부에도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한·미·일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책에 중국과 러시아가 선뜻 동의할 리가 없고, 궁지에 몰린 북한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 남북관계의 철저한 단절은 그 자체로 대북 지렛대를 완전히 잃는 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는 자신이 조성한 강경여론을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 안보 정치화의 자연스런 귀결이자 정부가 곧 부닥치게 될 딜레마다.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두고두고 이 딜레마와 씨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방법은 있다. 중도·실용을 말하는 정권답게 안보의 정치화에 거리를 두고 현실성 있는 접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가 풀리고 나라가 제대로 선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드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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