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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8 20:21 수정 : 2010.06.19 16:27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6·2 지방선거 결과는 주요 정책과 권력구도, 민주주의 제도 등에서 웬만한 총선을 뛰어넘는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 핵심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지난 수십년간 무비판적으로 되풀이된 ‘안보정치’의 틀이 무너진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풍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만 말해서는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다. 많은 유권자들은 정부가 조성하려 한 ‘천안함 바람’에 단순히 휘둘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천안함 침몰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임에 못잖게 유권자들의 태도 또한 이례적이었다.

국민들이 투표로써 보여준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위협론’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남북의 국력 차이가 이미 현격하게 벌어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체제 유지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한반도에서 남북간 전면전의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했다.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발언이지만, 북한이 전면전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점에서는 진실이다.

다른 하나는 ‘위협 키우기’에 대한 강한 견제다. 전면적이지는 않더라도 북한은 잠재적·현실적 위협이 된다. 여기에는 북한 정권 자체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지만 외부 환경 역시 큰 영향을 끼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비정규전·특수전 능력을 키우는 것은 제한된 자원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스스로 주장하듯이 강성대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약함의 표현인 셈이다. 그런데 궁한 쥐는 고양이를 물기도 한다. 이번에 국민 다수는 정부가 발표한 대북 초강경 조처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들 조처가 실효성은 없이 위협을 키울 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정치의 이면에는 이른바 ‘좌빨론’이 자리잡고 있다. 좌빨론은 시대착오적 냉전 이데올로기임에도, 현 집권세력의 유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좌파정권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보수세력의 정권교체 전략이었지만, 집권 뒤 좌빨론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적극 보도한 <문화방송>은 ‘좌빨 기자’들의 본거지로 분류돼 ‘점령’ 대상이 됐고, 전교조 조합원은 ‘좌빨 교사’로 간주돼 끊임없는 탄압을 받고 있다. 천안함 정국도 다를 바가 없다. 정부에 동조하지 않는 목소리는 친북으로 몰렸고 이상한 간첩사건까지 연이어 발표됐다. 정부·여당은 선거 당일까지 그 효과를 믿었으나 결과는 안보정치와 좌빨론의 침몰이었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일수록 자신의 모순을 감추려고 ‘내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통치 방식에 의존한다. 그럴수록 정치 구조는 뒤틀리고 정책은 왜곡된다. 단적으로 지금 정부가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를 절반이라도 받아들였다면, 10·4 정상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흉내라도 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안보정치 침몰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정책 선택의 여지가 커진다. 그 출발점은 천안함 침몰이 지난 2년여 동안의 안보정책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쪽의 ‘사악한 의도’만 앞세워서는 남북의 상생·공영은 고사하고 천안함 사태와 북한 핵 문제도 제대로 풀 수가 없다.

미국 안보정책의 기본은 어떤 경우에도 본토를 전장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지만, 북한과 맞붙어 살아야 하는 우리는 그렇지가 못하다. 안보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경제와 사회에 바로 반영되고, 권력자들은 이를 정치에 활용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안보정치와 평화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이번 국민의 경고는 그래서 더 값지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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