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7.06 23:43 수정 : 2010.07.06 23:43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미국이 대규모 병력을 일본에 주둔시켜온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을 확실하게 하위 동맹자로 잡아두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넘겨받지 않고도 이를 달성해왔다. 지난해 집권한 일본 민주당 정부가 ‘대등한 일-미 관계’를 내건 데는 이런 상태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인류 역사가 보여주듯 외국군의 장기주둔은 그 자체로 주권침해의 원인이 된다.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보유해온 우리나라는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과 전략에 따라 한반도 정세를 조절한다. 미국은 남북 사이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막는 구실을 여러 차례 했지만, 자신의 이해가 깊숙하게 걸리면 태도가 달라진다. 1994년 1차 북한핵 위기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와 협의도 없이 북한을 정밀타격하는 계획을 세운 경우가 그랬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이 자신의 작전통제권에서 벗어나 대규모 병력을 쿠데타에 동원한 것은 사실상 방관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어느 쪽에 있든 한-미 동맹이라는 틀은 달라지지 않지만, 군사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은 크게 바뀐다. 전작권 환수는 지금 운전석에 앉아 있는 미국이 조수석으로 옮기고 우리가 운전석으로 가게 되는 것과 같다. 조수가 어떤 의견을 내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권한이 훨씬 큰 법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전작권 환수 반대론자들은 전작권이 미국에 있더라도 우리 대통령이 한미연합사 등을 통해 공동으로 주권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운전수와 조수가 함께 운전을 한다는 궤변이다.

궤변은 다른 궤변으로 이어진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전작권 환수를 연기한 이유로 우리 군의 준비능력 미비와, 북한이 ‘강성대국 실현’을 예고한 2012년에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질 수 있는 점 등을 든다. 그러나 ‘애초 계획대로 2012년에 환수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 역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자립을 달성하겠다는 후진국형 목표일 뿐이다. 차라리 솔직한 것은 두 가지 ‘기대효과’를 꼽은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언급이다. 국민들이 안보에 불안감을 갖지 않게 되는 것과 외국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전작권 환수 연기의 주된 이유는 안보불안감을 꾸준히 거론해온 보수세력을 만족시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집권세력은 이들의 불만을 다독이지 않은 채 다음 대통령 선거를 맞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작권 환수 연기가 강경 대북정책과 직간접으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한 체제 붕괴론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바뀐 게 없다’고 했다. 이전 대북정책의 모든 성과에 대한 부인이자 앞으로도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은 것은 북한이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거나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뿐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봉쇄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는 더 나빠지고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실질적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체제를 빨리 붕괴시키기 위해 압박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국지전을 넘어서 전면전 가능성도 포함한 모험주의 노선이다. 전작권 환수 연기를 적극 주장한 여러 인사들은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둔다.

이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에서 남북간 전면전의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전작권 환수 연기의 배경에는 강경 대북정책의 지속과 한반도 긴장 고조가 전제돼 있다. 전쟁은 없다면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기존 정책의 실패를 합리화하고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모순된 태도다. ‘전작권 궤변’의 귀결이 바로 이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지석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