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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7 21:21 수정 : 2010.08.17 21:21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동북아의 경제 규모가 유럽과 북미 수준으로 커져가는 것으로 환영할 일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가 않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한반도 식민지배 사과 담화에 대한 중국 반응만 봐도 그렇다. <환구시보>는 “일본이 역사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차이를 보인다”며 “한-미-일 동맹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일본의 움직임을 신냉전 구도의 틀에서 파악한 것이다. 중국의 경계심은 한-미 합동훈련에 대한 언급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지난 11일 우리나라 국회의원 대표단에게 “실제로 서해에 미국 항모가 들어올 경우 이젠 중국 인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근대 이후 일본의 외교노선은 크게 봐서 탈아입구(脫亞入歐)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서구의 우월한 문명과 맞설 수 있는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일본뿐이며 다른 나라는 뒤처져 있다는 문명-야만의 논리가 깔려 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아시아의 연대’나 ‘흥아’(興亞)를 말하더라도 자신의 지배권 또는 지도력의 관철을 전제로 한다. 아시아 중시를 앞세우는 지금의 민주당 정권 역시 이런 사고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권 주요 인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본 전체로는 과거 관성이 이어지고 있으며, 민주당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는 그 결과로 볼 수 있다.

지난 수십년간 탈아입구론을 뒷받침한 게 미-일 동맹이라면, 최근 그 자리를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이 대체해가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한다’는 세 나라 지도자들의 잇단 발언에는 자신과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구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여러 인사들은 미국과 일본 이상으로 대중국 공세에 나서는 모습까지 보인다.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의 견제가 노골적이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확실한 근거 없이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패권국 지위를 위협받지 않겠다는 의지는 더 강해지고 있다. 중국으로선 이런 미국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일본과 한국까지 가세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미 훈련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한국이 미국·일본의 향도가 되려 한다는 의심이 작용한다.

이런 갈등구도는 미국과 일본이 대러시아 공동대응과 세력권 분할을 위해 밀약을 맺었던 한 세기 전과 닮은 점이 있다. 물론 약소국이었던 한국은 상당한 중견국가로 성장했다. 새삼 가다듬어야 할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경험 등 여러 측면에서 중간자·균형자적 존재다.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중국의 패권주의를 모두 겪은 탓에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도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의 국력도 갖췄다. 강한 외교를 해나갈 기반을 가진 셈이다.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이다. 남북 사이에 활발하게 대화와 교류·협력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동북아의 갈등도 줄어드는 반면 남북의 대결은 전체 대립구도를 고착·강화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에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이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큰 시야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열려야 하고 남북 정상회담도 해야 한다. 대북 식량지원조차 하지 않으면서 뜬금없이 통일세 얘기를 꺼낼 때가 아니다.

운동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 팀을 보면 선수들의 개인기, 팀워크, 코치진의 지도력이 비슷하게 기여한다. 일반 조직이나 국가도 다를 바 없다. 우리 국민의 역량은 뛰어나고 팀워크도 괜찮은 편이다. 그럼에도 동북아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면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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