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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2 20:11 수정 : 2010.11.02 20:11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배가 확실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무척 억울할 것 같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선거 특성상 야당이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핵심 정책마저 저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추진한 금융개혁과 의료보험 개혁은 미국과 미국인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여론도 지지 쪽이 높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보개혁법 철폐와 금융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이 세를 불린다. 사실 미국인이 불만을 갖는 고실업과 저성장, 재정적자 등은 이전 공화당 정부의 책임이 훨씬 크다. 오바마에게 ‘왜 더 철저하게 개혁을 하지 못했나’라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지금 공화당처럼 개혁을 무위로 돌리려는 행태는 2008년 경제위기를 불러온 당사자로서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오바마가 이런 분위기에 끌려가서는 개혁은 개혁대로 실패하고 국민 지지도 더 떨어질 것이다.

선거 결과를 의식한 섣부른 변화 추구가 오바마에게 덫과 같다면, 우리 청와대는 반대로 바뀌어야 할 때 바뀌지 않는 게 문제다. 한나라당의 주류는 여전히 1980~90년대 민정당과 민자당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한나라당이 최근 ‘개혁적 중도보수’를 내걸었다. 대선 전략이든 복지정치라는 새 패러다임에 대한 대응이든, 나름대로 변화에 대한 절박감이 느껴진다. 당에는 소수파이긴 하지만 개혁적 중도보수에 걸맞은 세력도 존재한다. 한나라당으로선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당내 민주주의를 확장한다면, 아직도 여전한 ‘이권연합체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새출발을 할 좋은 기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노선 정비의 시금석이었던 ‘부자감세 철회’ 문제는 본격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좌초한 상태다. 결정적 계기가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의 전화 한통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개혁적 중도보수 담론을 막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변화를 거부하는 구심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폭동으로 매도한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을 외교통상부 2차관으로 중용한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통해 당시 한-미 쇠고기협상의 정당성을 확인받고 싶겠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근거 없는 자기확신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의 불통과 버티기는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대통령은 국회의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법정 시한을 넘기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했다. 4대강 사업 예산에 손대지 말라는 ‘협박’이다. 이 대통령의 준법 논리는 아주 이중적이다. 4대강 사업은 이미 갖가지 탈법·불법으로 얼룩져 있으며, 민간인 불법사찰은 또다른 보기다. 청와대 쪽이 공기업 임원 명의를 도용한 5대의 ‘대포폰’을 만들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제공한 사실까지 드러났음에도 청와대는 아직 자신의 총체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옹고집은 대북정책에서도 심각하다. 천안함 사건 이전부터 남북관계에서 새 접근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권 안에서도 적잖았으나 그때마다 제동이 걸렸다. 가온머리(컨트롤타워) 기능이 취약한 이명박 정부에서 도대체 누가 강경론을 주도하는지를 놓고 여러 추측이 있었으나 결론은 이 대통령이었다. 북한의 굴복이 먼저라는 대통령의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다른 말이 나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핵문제는 악화하고 주변 4강의 이해관계는 더 날카롭게 충돌한다.

역량과 권력기반은 이전보다 떨어지더라도 권력자의 자신감은 커지는 경우가 있다. 재벌기업 2·3세 경영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통령 또한 임기 뒤쪽으로 갈수록 힘이 약해지지만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더라도 방향이 옳지 않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 대통령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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