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30 20:48
수정 : 2010.11.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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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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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넘었으나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민들을 계속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크게 둘로 압축된다.
하나는 북한의 국내총생산에 맞먹는 국방예산을 쓰고도 왜 북쪽 공격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장비가 열악하다면 그 많은 예산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고, 시스템이 문제라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군 지휘부와 장교들이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남북 사이에 불안한 일들이 잇따르는 까닭에 대해서다. 이번 일과 천안함 사건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남쪽 관광객 피살에 따른 금강산관광 중단, 북쪽의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임진강물 방류로 인한 남쪽 민간인 사망 등 큰 사건이 줄을 이었다. 이전 정권 20년 동안 일어난 정도의 일들이 최근 이삼년에 집중된 것을 북한 체제의 속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첫째 문제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우선 서해5도는 남쪽 육지와 멀리(120~230㎞) 떨어진 작은 섬들로(다 합쳐봐야 울릉도 크기다), 북쪽의 핵심 무력 앞에 바로(10여㎞) 노출돼 있다. 남쪽 전체로 보자면 전진기지 성격이다. 북쪽 군단 병력이 버티고 있는 옹진반도 주변 무력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게다가 전면전 위험을 감수하면서 마구 대응할 수는 없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도 국민의 절대다수는 ‘제한적 군사적 조처’를 지지하지만 전쟁에는 반대한다. 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기도 쉽지 않다. 이런 군사적 딜레마는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피하기 어렵다.
둘째 문제는 명확한 답이 있지만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남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휴전상태에 있다. 불안 속에 평화를 유지해온 구조다. 가장 큰 변수는 남북 당국의 정책이다. 평화가 유지될 때는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이 있었고, 대결을 지향할 때는 갈등이 잇따랐다. 이명박 정부는 분명 후자 쪽이다. 이 대통령은 그제 발표한 담화문에서 “더 이상의 인내와 관용은 더 큰 도발을 키운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분명히 알게 됐다”며 “그동안 북한 정권을 옹호해온 사람들도 이제 북의 진면모를 깨닫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잇따르는 남북 갈등의 원인을 ‘인내와 관용’과 ‘북한 정권을 옹호해온 사람들’에게 돌린 것이다. 이전 정권에 대한 비난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남탓 대북정책’이다.
이런 태도는 목소리 큰 보수세력에 적극 편승하는 점에서 안보포퓰리즘이자, 북한 정권을 현존하는 정치적 실체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악으로 본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적이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결단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서적 수사 외에는 사태 재발을 막고 평화를 보장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과거 모든 정부가 그토록 피해온 일이지만, 지금은 거꾸로 가는 분위기다. 그야말로 안보의 파탄이다.
지난 6개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다뤄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남북관계 민심과 관련해) 대체로 보수와 진보가 각각 15~20%씩 양쪽에 포진돼 있고 나머지 60~70%가 중도예요. 그 중도는 정부가 가는 쪽으로 대개 따라갑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중에서 대체로 5~10% 정도는 다시 극진보와 극보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진보 중에서도 10%는 정부가 잘 설득하면서 끌고 가면 동조하고, 보수 쪽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정부가 중심을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갈수록 극보수 쪽으로 향한다. 적의만 있고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정치적 손익계산이 앞서서는 안보를 이뤄낼 수 없다. 남탓에 앞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조차도 왜 남북대화를 추진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 아닌가.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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