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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8 19:16 수정 : 2013.12.19 11:37

김지석 논설위원

적대하는 진영의 유능한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있다. 그 사람이 우리 편이라는 미확인 정보를 꾸준히 흘리는 것이다. 고위 관계자가 실수했다는 듯이 그 사람에게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도 괜찮다. 긴가민가하던 상대 진영은 어느 순간 의심의 늪에 빠져 그 인물을 숙청하게 된다. 냉전 시절의 첩보 소설은 물론이고 삼국지나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북한의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에 대한 평가는 특히 북한 바깥에서 좋았다. 그를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경륜과 태도, 품성 등을 칭찬한다.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아마도 (북한 안에서) 가장 세련된 대화 상대이자 가장 국제적인 사람이었고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당이 어떻게 협력하는지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일 것”이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장성택이 대외 경협을 추진하는 핵심 인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북쪽 바깥의 이런 태도는 불안한 젊은 권력자를 자극하는 한 요인이 됐다. 본의든 아니든 이들은 결국 장성택 숙청의 공모자가 된 셈이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고모부인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한 데는 당연히 냉혹한 권력의 논리가 작용한다. 김정은은 ‘백두혈통’을 정통성의 최대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력은 보잘것없다. 어머니인 고영희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동포로 북쪽에서 무용수를 했을 뿐이다. 반면 항일유격대 출신의 어머니를 둔 고모 김경희와 장성택은 수십년 동안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다. 김정은은 두 사람을 그냥 두면 정통성이 뿌리부터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장성택 숙청을 설명하는 다른 절반은 노선 차이다. 그에 대한 판결문 가운데 이런 게 있다.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 작품과 현지지도 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 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 청사 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 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수령체제를 무시했다는 단죄다.

북한은 지금 ‘두 개의 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특구 등 외부에 대한 개방과 주민들의 이동을 자유화하고 통제를 완화하는 내부 개방이 그것이다. 최근 북쪽을 여행한 외국인들은 어느 곳이든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개방은 수령체제와 충돌한다. 개방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장성택은 이를 실감했을 것이다. 모자이크영상 작품 따위를 모시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가 목적의식을 갖고 추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장경제를 선호하고 1인 지배 체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심점이 됐을 법하다. 판결문에도 “(장성택이)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했으며”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딜레마는 장성택을 처형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김정은이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면 혈통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 경제 활성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개혁·개방을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북쪽 경제는 식량 사정이 나아지고 시장이 확대되는 등 나름대로 개선됐다. 이는 김정은에게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령체제의 근거를 잠식한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한 다음날부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공개활동을 하는 것은 뻔뻔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북쪽 경제특구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설치된 조선경제개발협회의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미국 <에이피> 통신과 회견을 하고 ‘북한의 경제 정책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추구하는 개혁·개방과 1인 지배 체제 강화는 둘 다 실패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해법은 분명히 있다. 1인 지배 체제 강화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과거 박정희 정권도 겪었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깨닫지 못한다면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의 무덤이 될 수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북한 정세와 우리의 바람직한 대응 자세 [오피니언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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