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19 18:23
수정 : 2014.05.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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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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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존의 여러 국가기구와 사회 체제를 혁신하고 새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온갖 모순이 이번 참사에 집약된 점에서 당연한 움직임이다. 참사의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더 큰 위기가 올 것은 분명하다.
다양하게 거론되는 새 체제의 모습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람 중심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이나 물질적 목표, 추상적인 이념을 중심에 둘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대표하는 사람의 존엄성을 높이고 역량을 골고루 키워가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 맞은편에는 여러 해 전부터 경제·정치·교육·문화·의식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규제하는 원리가 된 신자유주의가 있다. 시장근본주의와 억압적 권력을 두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는 한 또 다른 참사를 피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내놓은 여러 대책은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가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해경을 해체하고 이른바 관피아의 폐해를 없애겠다는 따위의 조처는 임기응변식의 각론일 뿐이다. 그보다 선행해야 할 것은 중립적인 진상조사위 등을 통해 문제를 샅샅이 밝혀내고 새 체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모습에는 ‘내가 해답을 제시했으니 정치권과 국민은 따라오라’는 권위주의가 넘쳐난다. 특정 범법자에 대한 수백년의 형 선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건너뛴 은닉재산 환수 등 초법적 내용이 곳곳에 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최근 구체적 실상이 드러난 정부의 방송 장악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많은 기자가 있었으나 질문을 전혀 받지 않고 자리를 뜬 것도 상징적이다. 이는 정부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 등에 대해 억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제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불과 4년 전인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복지 문제가 최대 화두가 된 바 있다. 2012년 대선에서도 복지 확충과 경제민주화는 모든 후보의 공통분모였다. 박 대통령이 집권 이후 이 의제들을 제대로 추구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복지·민주화와 더불어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를 추구해야 할 때다. 전쟁의 반대로서 소극적 평화를 넘어 간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없는 상태가 적극적 평화다. 이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면서 그 사회의 활력과 구성원들의 행복을 뒷받침하는 본질적 요소다.
평화를 이루려면 먼저 ‘시큐리티’(security)가 확보돼야 한다. 시큐리티는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는 ‘안보’지만 사회 안의 각 주체에 대해서는 ‘안전’이 된다. 곧 세월호 사건을 나 몰라라 했던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이상한 태도와는 달리 안보와 안전은 둘이 아니다. 여기에다 공정한 사회구조,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한 관계, 공정하고 공평한 참여 환경의 형성 등이 갖춰져야 평화가 유지·확대될 수 있다.
무엇을 하든 공동체적 삶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다. 공동체 안의 다양한 관계 사이에 어떤 폭력적 내용도 포함되지 않는 것이 평화이기도 하다. 신뢰, 특히 대다수 사람을 도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는 ‘일반적 신뢰’는 집단적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새 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이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주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대답이 62.5%나 됐다.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기존 모순이 확대 재생산돼 위기가 일상화할 것이다.
다리의 지탱력은 가장 약한 교각의 힘으로 가늠된다. 다수의 안전이 보장되고 평화가 이뤄진다면 모두가 더 강해진다. 모두가 평화 속에서 창의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한갓 꿈이어서는 안 된다. 권위주의로는 이 꿈을 이룰 수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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