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1 18:36
수정 : 2014.08.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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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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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다. 하루도 피를 보지 않는 날이 없다. 중동이 아무리 ‘세계의 화약고’라고 하지만 이라크, 가자지구, 시리아 등 여러 곳에서 동시에 유혈분쟁이 벌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내전 양상을 보이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이미 1000명 이상 숨졌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도 충돌이 계속되고, 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도 각종 갈등을 겪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역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패권전환기라는 공통된 배경을 갖는다. 미국의 패권이 느슨해진 곳에서 새로운 힘들이 생겨나 충돌하는 양상이다. 2차대전 이후 70년 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패권 재편이 일단락될 때까지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자본주의가 지구촌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이후 위기와 갈등의 구조를 살펴보면 대략 40년의 큰 주기를 갖는다. 자본주의를 주도하던 나라들은 1890년대에 함께 불황을 겪었다. 이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시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술 및 제도 혁신을 중심으로 한 국내 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은 양쪽에서 대체로 성공했으나 후발국이었던 독일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를 이겨낸 나라와 이들에 도전하는 나라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1차 대전이 일어났다. 이후 1920년대에 자본주의는 부흥기를 맞았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전반에 걸쳐 대공황의 파고가 몰아닥쳤다. 혁신이 필요한 시기가 다시 왔다. 상대적으로 위기에 잘 대처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독일·일본·이탈리아 사이에 또 갈등이 커졌다. 2차 대전이 벌어졌다. 1950~60년대는 전쟁의 승자들이 주도한 활황기였다.
1970년대에 다시 지구촌 전체에 위기가 닥쳤다. 미국은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고 석유위기 등과 맞물리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70년대를 지배했다. 80년대에 들어 서구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위기에 잘 적응했으나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은 그렇지가 못했다. 소련·동유럽 나라들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전반에 걸쳐 무너졌다. 과거와 같은 세계대전은 없었으나 변화의 폭은 그 이상이었다. 다시 승자 중심의 활황기가 왔다. 하지만 새 위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패턴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40년 주기의 큰 위기가 닥치고 난 뒤 잘 대처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생긴다. 둘 사이의 갈등이 커지면서 대략 20년 뒤에 ‘폭력적인 해법’이 추구된다. 이후 승자 중심의 활황기가 오고 다시 20년 뒤에 새 위기가 닥친다.
지금은 위기 이후의 개혁기에 해당한다. 과거 예로 볼 때 주된 도구는 변함없이 기술 및 제도 혁신이다. 거기에 적절한 대외관계가 추가돼야 한다. 어느 나라건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적인 정책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의 성패에 따라 2020년대 중후반쯤 일어날 큰 갈등의 승자가 결정될 것이다. 새 패권 구조와 향방도 이때쯤이면 분명해질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동아시아 나라들이 변화에 잘 적응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유럽은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대외 개입을 꺼리는 것은 소극적이어서라기보다 현실적인 힘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간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고 인도·브라질 등도 비슷하다.
핵심 변수는 중국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중국의 역할을 전향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미-중 관계는 세계적인 갈등의 성격과 해법을 결정할 열쇠가 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나라들한테는 대중국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기술·제도 혁신과 강한 외교에 보태 하나의 과제를 더 풀어야 한다. 남북 관계가 그것이다. 난세에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 남에게 매달리게 된다. 방향을 상실한 대가는 ‘잃어버린 20년(더 길 수도 있다)’으로 나타날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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