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27 18:48
수정 : 2015.04.27 18:48
내년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은 1기 버락 오바마 정부(2009~13년)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최근 나온 그의 책 <힘든 선택들>을 보면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핵심 대상은 중국이다.
취임과 동시에 세 접근방식이 설정된다. 첫째, 대중국 관계 확대다. ‘경쟁하되 협력을 증진해 충돌을 피할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한국·타이(태국)·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과 동맹 관계를 강화해 힘의 균형을 잡는다. 아울러 인도를 아태 지역 정치판에 완전히 끌어들인다. 셋째, 아세안과 아펙 등 지역 다국적 기구를 강화하고 미국의 존재감을 높인다. 중국을 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추진도 이에 포함된다. 클린턴은 세 접근방식을 합치는 것을 선택했다고 했지만 이후 미국은 둘째와 셋째에 더 치중하게 된다.
미국의 이런 구상이 6년 만에 중요한 결실을 맺었다.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합의를 비롯한 미-일 동맹 강화가 그것이다. 두 나라는 지구촌 전체를 염두에 둔 군사일체화를 꾀한다. 미국은 특히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지나는 남중국해에서 일본 역할이 강화되기를 바란다.
일본 우익으로선 수십년의 염원이 이뤄지고 있다.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이를 ‘일본열도 불침항모론’과 ‘1천해리 해상교통로 방위론’으로 표현한 바 있다. 총리로선 처음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사람도 그다. 당시부터 본격화한 일본의 우경화 추세는 한때 주춤하다가 다시 거세져 이번에 결정적 전환점을 맞았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대국화다.
미국과 일본의 생각이 똑같지는 않지만 대중국 연합전선 구축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우리에게 끼칠 파장도 크다. 세 가지 악영향이 우려된다.
첫째, 과거사 문제의 실종이다. 미국은 자신과 손발을 맞춰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제공할 나라가 필요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외에 대안이 없다. 과거사 문제는 부차적일 뿐이다. 물론 피해국들의 움직임과 미국 내 여론이라는 변수는 있다.
둘째,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오바마 정부는 사실상 방관정책인 ‘전략적 인내’를 기조로 해왔다. 임기도 1년 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성과가 불확실한 핵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보다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서 동아시아 전체의 판을 짜나가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셋째,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적 대결 양상의 심화다. 북한과 러시아가 부쩍 가까워지고 있다. 2013년 초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는 다소 냉랭해졌지만 최근 회복되는 조짐을 보인다.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압박할수록 중국은 북한의 가치를 재평가할 것이다. 중-러 협력은 이미 긴밀하다.
셋 모두 우리나라의 입지를 좁히고 부담을 키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구조가 굳어져버릴 수도 있다. 새 사고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이전에 제기됐던 균형자론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이기도 한 균형외교는 ‘대외관계에서 동시에 실현해나갈 대립되거나 상이한 목표와 요구들 간의 균형을 취하고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을 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균형외교의 동북아판 비전이라 할 수 있는 동북아균형자론을 제창했다. ‘우리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함으로써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균형자론은 우리 역량에 대한 긍정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적어도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강대국 사이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중심적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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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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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공통점이 많다. 악화하는 북한 핵 문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미군 역할의 변화, 일본의 과거사·독도 도발 강화, 중국의 팽창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다 ‘미국·일본 대 중국’이라는 대결 구도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우리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우리와 관련된 문제는 더 나빠지고 동북아의 평화·번영도 어렵다. 균형자론은 지금이 더 절실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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