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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8 19:28 수정 : 2015.05.18 19:28

최근 북한 행태에 대해 ‘뭔가 심상찮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계속되는 ‘공포정치’는 불안한 권력 기반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20년 가까이 지속된 선군정치 속에서 권력을 키워온 군부가 동요한다면 체제 지속성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달 초순 공개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는 내용의 진위와는 별개로 북쪽 의도를 보여준다. 핵무기를 실은 탄도미사일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기술은 현재 미국·중국·러시아 등 몇 나라만 확보하고 있다. 북쪽 뜻은 ‘나도 그런 기술을 가진 것으로 대우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한마디로 ‘모험주의’로 표현할 수 있다. 숙청됐다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만 해도 얼마 전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강경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고 강경하더라도 최고 권력자 눈 밖에 나면 몰락할 수 있는 게 지금 북쪽 분위기인 듯하다.

모험주의는 처음이 아니다. 최고의 표현인 핵실험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알기가 쉽다. 핵실험은 2006년 10월9일, 2009년 5월25일, 2013년 2월12일 등 세 차례 이뤄졌다. 대략 3년 간격이다. 2009년 실험은 다음해 3월의 천안함 사건과 11월의 연평도 포격과 묶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핵실험 조금 전에는 새 미사일 시험발사가 있었다. 2006년 7월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인 대포동 미사일을 쐈다. 2009년 4월엔 장거리 로켓인 은하2호를, 2012년 12월엔 은하3호를 쏘아 올렸다. 이번 에스엘비엠 시험발사는 4차 핵실험을 예고한다고도 할 수 있다.

모험주의는 일차적으로 북쪽 체제의 경직성에 원인이 있다. 항상 위기와 대처능력을 과장해 보여줌으로써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극장국가의 속성상 선택의 여지가 좁은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간 미국·한국 등 관련국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풀고 평화구조를 만들어가기보다는 대결을 추구하고 자신의 의제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안보장사다. 지난해 3~4월 경기도 파주와 백령도, 강원도 삼척에서 북한 무인기가 잇따라 발견됐다. ‘아마추어 수준의 조잡한 무인기’였음에도 ‘안보 공포’가 조성됐고 결국 수백억원을 들여 이스라엘제 북방한계선(NLL) 감시 무인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번의 에스엘비엠 시험발사도 기술적으로 ‘초보적 수준’이라는 데 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하지만 ‘몇 해 안 실전배치 가능’이라는 분석이 더해지면서 중요 현안이 됐다. 핵잠수함 도입과 기존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계(KAMD)의 전면 재편 필요성까지 거론된다. 올해 들어 미국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의 핵 역량에 대한 평가를 대폭 상향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은 몇 해 안에 중국 수준의 핵 강국이 돼버린다.

안보장사는 군비 및 대결구도 강화와 직결된다. 북한 위협은 미-일 군사일체화의 빌미가 되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사드(고도도 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 추진을 위한 근거로 활용된다. 대중국 압박을 겨냥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자연스럽게 안보장사의 배경을 이룬다. 안보 논리가 앞서는 정부 대북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그 결과는 상황 악화의 악순환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핵실험 사이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상황 변경을 꾀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대화 동력은 꺼졌고 연평도 포격 등 최악의 준전시상태를 겪었다. 2차·3차 핵실험 사이에는 2012년 북-미 2·29합의가 있었으나 남북 관계에서는 신경전만 있었을 뿐 돌파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지석 논설위원
현재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새판 짜기’ 시도는 당연하다. 동력이 나올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남북 (최)고위급 수준의 상위정치, 각종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하위정치, 6자회담 재개 노력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나라와 책임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위상과 역량을 갖고 있다. 이런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은 채 새 핵실험 상황까지 가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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