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북한은 안보에 대한 자기중심적 과잉인식을 군사적으로 표출해왔고 이는 관련국의 경계심을 키움으로써 악순환 구조를 강화시켰다. 북한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이런 악순환을 끊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 정부도 북한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동’이 거세다. 사안의 성격으로 볼 때 이 파동은 시간이 갈수록 가라앉기는커녕 우리나라 안팎의 갈등과 균열을 구조화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낳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의제’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지난달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이 계기가 되고 있지만, 2014년부터 일관된 시나리오에 따라 추진돼왔다. 곧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는 미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 미-일 군사 일체화와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위안부 합의를 비롯한 ‘강압적 한-일 화해’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드 배치로 달성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분명하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첫째, 동북아 통합 미사일방어(엠디) 체제 구축이다. 사드는 철저하게 미국 무기이고 미군이 운용한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기존 엠디 체제와 통합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체제는 중국·북한·러시아 등을 함께 겨냥한다. 소프트웨어를 간단하게 손보는 것만으로 2천㎞ 가까이 확장되는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 안에는 중국 동부와 동북부의 주요 지역이 모두 들어온다. 둘째, 한국을 확실하게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번 결정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에 충실하게 따랐다. 주한미군에 초점을 맞춘 사드 방공 범위와 배치 장소는 물론 남중국해 갈등과 맞물리는 발표 시기까지 모두 미국이 주도했다. 사드 배치의 효과와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과 주민 반발 등 국내 갈등은 하위 파트너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다. 앞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여러 압박과 조처가 뒤따를 것이다. 중국의 격한 대응은 오히려 좋은 빌미가 된다. 셋째,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결속시켜 앞장서게 함으로써 미국의 정치력은 키우되 안보비용은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일정한 긴장이 필요하며, 사드 배치는 지속적으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은 중국과 타협할 수도 있지만 그 판단은 미국만이 한다. 마지막으로 사드 배치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와 일치한다. 사드의 상품성을 선전하는 데 한반도만큼 좋은 무대는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사드를 구매하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우선 북한 핵 문제 해결 노력이 실종되고 있다. 사드는 ‘핵을 가진 위협적인 북한’을 전제로 하고,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하는 것을 가정한다. 이는 중국이 핵무기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사드가 많은 미사일 가운데 핵무기를 탑재한 것을 가려내 요격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대응을 군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핵 문제를 악화시킨다. 무기 경쟁과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양립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동북아 안보 구조가 더 취약해지는 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에서는 군사 대결 대신 경제 협력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이는 지구촌의 성장을 떠받친 힘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 그런 추세가 역전되는 조짐을 보인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한반도 등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미·일과 중국의 대결은 최근 나타나는 각국의 보호주의 추세와 맞물려 안보 불안을 키운다. 사드 배치는 이런 흐름을 강화해 고착시킨다. 그 결과는 미·일-중 대치를 주전선으로 하고 남북 대결을 보조 전선으로 하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다. 따지고 보면 남북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미-중 전쟁 가능성과 엇비슷하다. 그런데 사드 배치는 북한에 더해 중국을 적으로 상정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리를 피하려다 호랑이까지 불러들이는 꼴이다. 오랫동안 북한은 동북아 안보 불안의 지속적인 근원이었다. 동북아 모든 나라가 자신한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북한이었다. 북한은 안보에 대한 자기중심적 과잉인식을 군사적으로 표출해왔고 이는 관련국의 경계심을 키움으로써 악순환 구조를 강화시켰다.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이런 악순환을 끊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 정부도 북한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북한화’를 상징한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사드 배치를 포기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외교 자원을 동원해 핵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해답은 한국의 북한화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 노력에 있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사드 파동과 ‘한국의 북한화’ |
논설위원 북한은 안보에 대한 자기중심적 과잉인식을 군사적으로 표출해왔고 이는 관련국의 경계심을 키움으로써 악순환 구조를 강화시켰다. 북한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이런 악순환을 끊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 정부도 북한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동’이 거세다. 사안의 성격으로 볼 때 이 파동은 시간이 갈수록 가라앉기는커녕 우리나라 안팎의 갈등과 균열을 구조화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낳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의제’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지난달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이 계기가 되고 있지만, 2014년부터 일관된 시나리오에 따라 추진돼왔다. 곧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는 미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 미-일 군사 일체화와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위안부 합의를 비롯한 ‘강압적 한-일 화해’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드 배치로 달성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분명하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첫째, 동북아 통합 미사일방어(엠디) 체제 구축이다. 사드는 철저하게 미국 무기이고 미군이 운용한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기존 엠디 체제와 통합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체제는 중국·북한·러시아 등을 함께 겨냥한다. 소프트웨어를 간단하게 손보는 것만으로 2천㎞ 가까이 확장되는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 안에는 중국 동부와 동북부의 주요 지역이 모두 들어온다. 둘째, 한국을 확실하게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번 결정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에 충실하게 따랐다. 주한미군에 초점을 맞춘 사드 방공 범위와 배치 장소는 물론 남중국해 갈등과 맞물리는 발표 시기까지 모두 미국이 주도했다. 사드 배치의 효과와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과 주민 반발 등 국내 갈등은 하위 파트너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다. 앞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여러 압박과 조처가 뒤따를 것이다. 중국의 격한 대응은 오히려 좋은 빌미가 된다. 셋째,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결속시켜 앞장서게 함으로써 미국의 정치력은 키우되 안보비용은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일정한 긴장이 필요하며, 사드 배치는 지속적으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은 중국과 타협할 수도 있지만 그 판단은 미국만이 한다. 마지막으로 사드 배치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와 일치한다. 사드의 상품성을 선전하는 데 한반도만큼 좋은 무대는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사드를 구매하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우선 북한 핵 문제 해결 노력이 실종되고 있다. 사드는 ‘핵을 가진 위협적인 북한’을 전제로 하고,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하는 것을 가정한다. 이는 중국이 핵무기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사드가 많은 미사일 가운데 핵무기를 탑재한 것을 가려내 요격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대응을 군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핵 문제를 악화시킨다. 무기 경쟁과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양립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동북아 안보 구조가 더 취약해지는 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에서는 군사 대결 대신 경제 협력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이는 지구촌의 성장을 떠받친 힘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 그런 추세가 역전되는 조짐을 보인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한반도 등에서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미·일과 중국의 대결은 최근 나타나는 각국의 보호주의 추세와 맞물려 안보 불안을 키운다. 사드 배치는 이런 흐름을 강화해 고착시킨다. 그 결과는 미·일-중 대치를 주전선으로 하고 남북 대결을 보조 전선으로 하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다. 따지고 보면 남북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미-중 전쟁 가능성과 엇비슷하다. 그런데 사드 배치는 북한에 더해 중국을 적으로 상정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리를 피하려다 호랑이까지 불러들이는 꼴이다. 오랫동안 북한은 동북아 안보 불안의 지속적인 근원이었다. 동북아 모든 나라가 자신한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북한이었다. 북한은 안보에 대한 자기중심적 과잉인식을 군사적으로 표출해왔고 이는 관련국의 경계심을 키움으로써 악순환 구조를 강화시켰다.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이런 악순환을 끊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 정부도 북한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북한화’를 상징한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사드 배치를 포기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외교 자원을 동원해 핵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해답은 한국의 북한화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 노력에 있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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