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사드 재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면서 중국과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게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시의적절하고 주도적인 노력이 필수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나라 안팎이 모두 그렇지만, 양쪽이 얽힌 경우가 늘어난다. 지금 불거진 주요 국제 현안들은 그 줄기를 따라가 보면 하나의 뿌리에 닿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은 미국이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기보다는, 미국이 달러 패권 등 모순을 전가할 수 있는 권력과 수단을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2010년 그리스의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비롯한 유럽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국제정치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약한 고리인 중동 지역에선 비슷한 시기에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격변기가 시작됐다. 그 왜곡된 결과물인 2014년 이슬람국가(IS) 출범은 ‘테러의 일상화’를 낳았다. 경제위기는 세계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중산층을 무너뜨려 많은 나라의 정치 구도를 바꿔간다. 지난 6월 가결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와 아웃사이더 억만장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그 사례다. 위기의 파장이 동아시아에서는 미-중 대결의 격화로 나타난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덜 받은 채 미국 등 지구촌의 혼란을 목격한 중국이 도광양회(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의 태도를 접고 ‘신흥 대국’을 주장한 것은 19세기 말 신흥 강국인 독일이 영국의 패권에 도전한 것과 닮았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재균형’을 내세우며 패권 유지·강화를 꾀하는 것도 과거 영국과 비슷하다. 미국은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중국은 군사력과 외교로 판을 바꾸려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을 둘러싼 갈등은 이 대결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에는 사실상 ‘내해’라고 할 만한 바다가 여럿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서해, 동해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동해를 제외한 세 바다는 중국을 크게 감싸고 있으며, 이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미-중 대결이 벌어진다. 가장 불꽃이 튀는 곳은 남중국해다. 미-중 지역 패권 경쟁은 이곳에서 결판이 난다고 해도 좋다. 동중국해는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의해, 서해는 한반도에 의해 막혀 있다. 중국으로선 센카쿠열도보다는 한반도가 마음이 편하다. 한-중 관계가 중-일 관계보다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는 이 구도를 바꿀 수도 있는 중요 변수다. 중국의 우려대로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망의 전진기지가 돼버리면 서해 쪽은 동중국해 못잖게 불안해진다. 중국이 말하는 이른바 ‘전략적 균형의 훼손’이다. 사드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우리에겐 재앙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려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사드 배치는 미-중 대결을 격화시키고 핵·미사일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요격 무기로서 사드의 효용성을 인정하더라도 배치의 이익은 잠정적이고 부분적이지만 부작용은 전면적이고 구조적이다. 사드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사드 재앙’으로 진전될 것이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면서 중국과 미국이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게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시의적절하고 주도적인 노력이 필수다. 아울러 미-중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시러큐스대학 학장 등은 미-중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전략적 보장’을 제안한다. 한쪽의 일방적 안보정책에서 오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여 각자의 선의의 의도에 대해 상대에게 신뢰감을 제공하고, 한쪽이 비우호적 의도를 갖더라도 상대에게 신속하게 알려 정책을 다시 조율할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충돌을 막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사드 문제에서는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양쪽이 핵심이익에 대해 이해하고 조율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저도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정치에 대한 모순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당한 게 어떻게 사드 배치와 연관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칼럼] ‘사드 재앙’을 피하려면 |
논설위원 ‘사드 재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면서 중국과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게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시의적절하고 주도적인 노력이 필수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나라 안팎이 모두 그렇지만, 양쪽이 얽힌 경우가 늘어난다. 지금 불거진 주요 국제 현안들은 그 줄기를 따라가 보면 하나의 뿌리에 닿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은 미국이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기보다는, 미국이 달러 패권 등 모순을 전가할 수 있는 권력과 수단을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2010년 그리스의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비롯한 유럽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국제정치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약한 고리인 중동 지역에선 비슷한 시기에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격변기가 시작됐다. 그 왜곡된 결과물인 2014년 이슬람국가(IS) 출범은 ‘테러의 일상화’를 낳았다. 경제위기는 세계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중산층을 무너뜨려 많은 나라의 정치 구도를 바꿔간다. 지난 6월 가결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와 아웃사이더 억만장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그 사례다. 위기의 파장이 동아시아에서는 미-중 대결의 격화로 나타난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덜 받은 채 미국 등 지구촌의 혼란을 목격한 중국이 도광양회(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의 태도를 접고 ‘신흥 대국’을 주장한 것은 19세기 말 신흥 강국인 독일이 영국의 패권에 도전한 것과 닮았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재균형’을 내세우며 패권 유지·강화를 꾀하는 것도 과거 영국과 비슷하다. 미국은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중국은 군사력과 외교로 판을 바꾸려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을 둘러싼 갈등은 이 대결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에는 사실상 ‘내해’라고 할 만한 바다가 여럿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서해, 동해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동해를 제외한 세 바다는 중국을 크게 감싸고 있으며, 이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미-중 대결이 벌어진다. 가장 불꽃이 튀는 곳은 남중국해다. 미-중 지역 패권 경쟁은 이곳에서 결판이 난다고 해도 좋다. 동중국해는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의해, 서해는 한반도에 의해 막혀 있다. 중국으로선 센카쿠열도보다는 한반도가 마음이 편하다. 한-중 관계가 중-일 관계보다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는 이 구도를 바꿀 수도 있는 중요 변수다. 중국의 우려대로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망의 전진기지가 돼버리면 서해 쪽은 동중국해 못잖게 불안해진다. 중국이 말하는 이른바 ‘전략적 균형의 훼손’이다. 사드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우리에겐 재앙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려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사드 배치는 미-중 대결을 격화시키고 핵·미사일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요격 무기로서 사드의 효용성을 인정하더라도 배치의 이익은 잠정적이고 부분적이지만 부작용은 전면적이고 구조적이다. 사드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사드 재앙’으로 진전될 것이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면서 중국과 미국이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게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시의적절하고 주도적인 노력이 필수다. 아울러 미-중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시러큐스대학 학장 등은 미-중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전략적 보장’을 제안한다. 한쪽의 일방적 안보정책에서 오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여 각자의 선의의 의도에 대해 상대에게 신뢰감을 제공하고, 한쪽이 비우호적 의도를 갖더라도 상대에게 신속하게 알려 정책을 다시 조율할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충돌을 막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사드 문제에서는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양쪽이 핵심이익에 대해 이해하고 조율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저도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정치에 대한 모순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당한 게 어떻게 사드 배치와 연관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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