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부는 이중의 의미에서 ‘내시 정부’다. 우선 정부 부처들은 들러리 꼴이 돼 청와대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집권 초기부터 문제가 됐던 소수 측근의 영향력도 여전한 것 같다. 이런 구조에선 대통령의 뜻과 그에 대한 충성심만 부각될 뿐이다.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의 정책 추진 역량은 역대 최악이다.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뭘 이뤘는지 꼽을 만한 게 별로 없다. 대신 극심한 반대에 부닥친 여러 정책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왜 그럴까. 정책의 내용과 추진 방식에 모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기존 주거지에 새 마을을 조성하려면 먼저 재개발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다수 주민의 동의를 얻어 조합 결성에 성공하더라도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골치 아픈 일이 반대파와의 갈등이다. 여기서 벽에 부닥쳐 사업이 무산되거나 양쪽 관계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 반대파는 크게 세 유형이 있다. 생계형, 명예형, 이권개입형이 그것이다. 생계형은 재개발이 되더라도 추가부담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거나, 구역 안에서 장사 또는 임대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명예형은 추진 주체에 대한 불만 등 인간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로, 대개 사업 추진 방식과 관련된다. 이권개입형은 리베이트를 목적으로 조합 운영권을 장악하려는 경우가 많다(<어느 재개발조합장의 죽음>). 이 셋에 ‘이념형’을 더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유형을 대부분 망라하게 된다. 이념형은 정책의 목표와 방향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다. 정책의 근본적 문제점은 반대파의 활동을 통해 드러나고, 심한 반발은 정책 실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자리를 잡으려면 애초부터 연관되는 사람들의 생활, 원활한 추진 방법, 내용의 타당성과 설득력, 이권의 공익화 방안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여기에 적용해보자. 7월13일 사드 배치 예정지로 발표된 이후 경북 성주 주민들은 연일 촛불집회를 이어간다. 이들은 사드 배치가 자신의 삶을 파괴할 거라고 확신한다. 전자파 피해는 없다고 정부는 단언하지만, 전국 참외의 3분의 2가량을 생산하는 주민들의 생활은 이미 망가지고 있다. 정부가 이들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결정을 내린 탓이다. 주민들은 명예형 반대파이기도 하다. ‘시골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나’라는 반발은 정부의 일방적 추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누구든 자존심이 상해버리면 돌이키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정부는 29일 김천시에 가까운 성주골프장 등 세 곳을 새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일종의 주민 분열책인데, 결국 김천 주민까지 우습게 여기는 태도다. 주민들은 사드 자체의 타당성도 문제 삼는다. 미국 미사일방어망(엠디)의 일부분인 사드가 배치되면 그 지역은 미-중 대결의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균형외교나 평화지향 안보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많은 주민은 성주 배치가 아니라 사드 배치 자체에 반대한다. 정부는 반대파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생계형 반대파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삶의 기반을 보장해주는 것이 해법이다. 또 명예형 반대파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동참시켜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에는 ‘왜 국가 정책에 따르지 않느냐’는 우격다짐이 묻어난다. 사드 배치 결정은 공론화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채 내려졌다. 누가 어떤 단계에서 무슨 의견을 제시했는지 오리무중이다. 주무 부서는 국방부이지만 계속 뒷북을 친다. 다른 결정 라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집권기 전체를 관통한다. 대통령 혼자서 모든 문제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소수 측근이 중요 현안을 좌우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한-일 12·28 위안부 합의, 우병우 민정수석 사태 등도 그렇다. 지금의 정부는 이중의 의미에서 ‘내시 정부’다. 우선 정부 부처들은 들러리 꼴이 돼 청와대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대통령의 지시와 무리한 밀어붙이기만 있을 뿐 합리적 토론은 설 자리가 없다. 집권 초기부터 문제가 됐던 소수 측근의 영향력도 여전한 것 같다. 이런 구조에선 대통령의 뜻과 그에 대한 충성심만 부각될 뿐이다. 박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여건과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뭐든 하면 된다고 하는 건 폭력이자 책임회피다. 과거 군사정권의 이런 태도는 숱한 비극을 낳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추진 역량은 재개발조합보다 못하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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