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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3 17:34 수정 : 2017.02.13 19:02

김지석
논설위원

중국은 신발 끈을 조인 채 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일본은 납작 엎드려 기회를 노린다. 북한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다. 12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가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미국의 그림자 속에서 두리번거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동북아 나라들의 모습이다.

국수주의적 포퓰리스트인 트럼프의 등장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은 동북아 모든 나라에 도전이 된다. 트럼프는 보편성을 갖는 패권국이 아니라 지구촌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해방된 제국을 추구한다. 위축되는 국력을 필요한 곳에만 집중시켜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적과 친구를 가르던 기존의 가치는 큰 의미가 없다. 이제까지 동맹도 비용은 큰 반면 효과는 떨어진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적뿐만 아니라 동맹도 가차없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동북아에서는 종합국력이 미국에 접근하고 있는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핵심이다. 총체적인 대결과 폭넓은 전략적 협력을 양 끝으로 해서 여러 형태가 가능하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첫 방문지로 한국과 일본을 택한 것은 둘을 미국 쪽에 단단히 불러세우기 위해서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중국이름 댜오위다오)에 대한 방어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 강행을 확인한 것은 대중국 전선의 말뚝박기에 해당한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무기전쟁’을 시작했다. 최근 두 나라 항공모함과 고성능 구축함, 탄도미사일과 미사일방어 무기, 첨단 전투기와 잠수함 등이 동아시아 지역에 일제히 등장했다. 기선잡기용 무력시위다. 경제전쟁도 예상된다. 이미 대중 환율전쟁을 예고한 트럼프가 철강·석유·자동차 등 중국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도 보복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1980년대에도 승승장구하던 일본을 억눌러 결국 장기불황에 빠뜨린 전례가 있다.

미-중 총체적 대결은 우리에겐 큰 족쇄가 된다. 사드 문제와 같은 안보 사안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지속적으로 유탄을 맞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무기가 한반도와 그 주변에 나타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더 많은 미국 전략무기가 상시적으로 우리 가까이에 오는 것을 바란다. 호가호위의 심리일 뿐 평화를 유지하고 핵 문제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 북한 핵 문제는 최우선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절제돼 있다. 트럼프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하지만, 해법 모색을 서두르는 분위기는 아니다. 핵 문제를 풀려면 미국 자신의 방법론을 확립해야 하는데, 아직 트럼프 정부 어느 곳에서도 폭넓은 검토를 하는 것 같지 않다. 미국은 대신 중국을 바라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본 뒤 대북 정책 기조를 설정하려는 것과 핵 문제를 대중국 압박 수단으로 쓰겠다는 게 그것이다. 의회와 미국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과 대북 선제타격 등 초강경론은 오히려 빈약한 문제 해결 의지와 좌절감, 무능을 반영한다. 이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최선의 길은 폭넓은 미-중 전략적 협력이다. 최근 며칠 동안 미국이 대중 압박 수준을 낮추고 중국이 일정하게 호응하는 ‘제한된 전략적 협력’으로 갈 조짐이 나타나 주목된다. 미국이 중국의 이른바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않고 평화적 세력 확대를 허용한다면 적어도 경제 문제에서는 중국이 양보할 여지가 있다.

남중국해 및 센카쿠열도 문제와는 달리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전략적 협력의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한반도 관련국, 특히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곧 한국과 미국이 해야 할 몫이 절대적이지만 중국이 빠지면 해법이 완성되지 못하는 구조다. 이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새 협력 틀을 모색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거꾸로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중국을 몰아붙이면 핵 문제는 더 나빠지고 새 갈등이 생기기가 쉽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체제는 다른 사안에서도 미-중 협력의 모델이 될 것이다. 이런 전략적 협력을 통해 미국은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고 중국은 말 그대로 평화롭게 대국이 될 수 있다. 왜 그 길로 가지 않는가.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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