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총체적 외교·안보 난국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된 책임이 우리 정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6일 탄도미사일 4발을 동해 쪽으로 발사했다. 한-미 연합 야외기동 훈련인 독수리훈련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최대 규모의 이 훈련은 4월 말까지 이어진다. 대북 공격 내용이 강화되고 항공모함과 첨단 전투기 등 미국 전략무기가 대거 동원되는 게 특징이다. 훈련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공세적으로 되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동북아 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이 헛돌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경제 제재를 본격화하면서 피해가 속출한다. 부지를 제공한 롯데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에 대한 제재도 늘고 있다. 수교 25돌을 맞는 한-중 관계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이런 모습은 퇴행적이고 치졸하다. 하지만 미-중 전략적 이익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 전략에 앞장서면서 중국의 전략적 핵 억지력을 제약하려 한다’며 ‘충돌이 발생하면 앞잡이 노릇을 한 한국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압박한다. ‘왜 미국과 풀 일을 우리에게 화풀이냐’라고 해봐야 무책임한 넋두리일 뿐이다. 일본이 자국 공관 주변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며 대사를 귀국시킨 지 거의 두 달이 됐다. 가해자인 일본은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켜보겠다며 큰소리친다. 반면 정부는 ‘소녀상 이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자세를 낮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은 이제 일상화했다. 또 다른 심각한 외교 실패다. 여기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검토를 공언한다. 주한미군 주둔비 증액 요구도 뒤따를 것이다. 우리와 관련된 주요 나라들이 모두 채권자인 듯이 청구서를 들이미는 모양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대외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는 씨뿌리기도 제대로 못 한 채 사라졌다. 적어도 임기 중반쯤에는 그 실패를 인정하고 새 정책 기조를 설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냉전식 사고방식과 정치성 강한 극단적 결정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결정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과정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누구의 발상인지도 알 수 없고 어떤 합리적 토론도 확인되지 않는다. 큰 흐름에서 분명한 것은 전략적 측면에서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확실하게 편입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그림을 그리고 일본이 적극 협력하는 구도에 우리의 운명을 송두리째 맡기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과 미국은 웃고 중국은 분노한다. 우리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핵 문제는 더 나빠진다. 그러잖아도 동북아의 갈등 구조가 심해지고 있다. 이는 군비 확장에서 잘 드러난다. 오는 10월 시작되는 미국의 2018회계연도 국방비는 6030억달러(684조원)나 된다. 세계 2위인 중국 국방비는 171조원, 일본은 52조원(세계 7위), 우리는 40조원(10위)이다. 지난해 지구촌의 국방비 지출은 전년보다 0.4% 줄었지만 아시아에선 5~6% 늘었다. 세계 국방비 지출의 균형점이 아시아 쪽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보고서). 이런 상황은 우리 외교·안보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외교·안보의 군사화 추세를 그대로 따라가거나 대결 구도의 한편에 서서 대결 강화에 기여하는 게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외교·안보 정책은 더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앞뒤가 꽉 막혀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화자찬을 되풀이하고, 여권은 종북 공세의 연장선에서 외교·안보의 정치화에 골몰한다. 무능하고 타락한 정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외교·안보의 전면적인 리셋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새 정부 구성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중심성과 전략, 의지를 새롭게 다지지 않는다면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를 풀고 한반도·동북아 평화구조를 만들 수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없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외교·안보 리셋’ 시급하다 |
논설위원 총체적 외교·안보 난국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된 책임이 우리 정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6일 탄도미사일 4발을 동해 쪽으로 발사했다. 한-미 연합 야외기동 훈련인 독수리훈련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최대 규모의 이 훈련은 4월 말까지 이어진다. 대북 공격 내용이 강화되고 항공모함과 첨단 전투기 등 미국 전략무기가 대거 동원되는 게 특징이다. 훈련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공세적으로 되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동북아 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이 헛돌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경제 제재를 본격화하면서 피해가 속출한다. 부지를 제공한 롯데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에 대한 제재도 늘고 있다. 수교 25돌을 맞는 한-중 관계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이런 모습은 퇴행적이고 치졸하다. 하지만 미-중 전략적 이익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 전략에 앞장서면서 중국의 전략적 핵 억지력을 제약하려 한다’며 ‘충돌이 발생하면 앞잡이 노릇을 한 한국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압박한다. ‘왜 미국과 풀 일을 우리에게 화풀이냐’라고 해봐야 무책임한 넋두리일 뿐이다. 일본이 자국 공관 주변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며 대사를 귀국시킨 지 거의 두 달이 됐다. 가해자인 일본은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켜보겠다며 큰소리친다. 반면 정부는 ‘소녀상 이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자세를 낮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은 이제 일상화했다. 또 다른 심각한 외교 실패다. 여기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검토를 공언한다. 주한미군 주둔비 증액 요구도 뒤따를 것이다. 우리와 관련된 주요 나라들이 모두 채권자인 듯이 청구서를 들이미는 모양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대외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는 씨뿌리기도 제대로 못 한 채 사라졌다. 적어도 임기 중반쯤에는 그 실패를 인정하고 새 정책 기조를 설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냉전식 사고방식과 정치성 강한 극단적 결정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결정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과정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누구의 발상인지도 알 수 없고 어떤 합리적 토론도 확인되지 않는다. 큰 흐름에서 분명한 것은 전략적 측면에서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확실하게 편입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그림을 그리고 일본이 적극 협력하는 구도에 우리의 운명을 송두리째 맡기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과 미국은 웃고 중국은 분노한다. 우리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핵 문제는 더 나빠진다. 그러잖아도 동북아의 갈등 구조가 심해지고 있다. 이는 군비 확장에서 잘 드러난다. 오는 10월 시작되는 미국의 2018회계연도 국방비는 6030억달러(684조원)나 된다. 세계 2위인 중국 국방비는 171조원, 일본은 52조원(세계 7위), 우리는 40조원(10위)이다. 지난해 지구촌의 국방비 지출은 전년보다 0.4% 줄었지만 아시아에선 5~6% 늘었다. 세계 국방비 지출의 균형점이 아시아 쪽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보고서). 이런 상황은 우리 외교·안보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외교·안보의 군사화 추세를 그대로 따라가거나 대결 구도의 한편에 서서 대결 강화에 기여하는 게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외교·안보 정책은 더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앞뒤가 꽉 막혀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화자찬을 되풀이하고, 여권은 종북 공세의 연장선에서 외교·안보의 정치화에 골몰한다. 무능하고 타락한 정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외교·안보의 전면적인 리셋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새 정부 구성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중심성과 전략, 의지를 새롭게 다지지 않는다면 최대 현안인 북한 핵 문제를 풀고 한반도·동북아 평화구조를 만들 수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없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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