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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1 17:40 수정 : 2017.05.01 19:23

김지석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언으로 이슈가 된 ‘사드 비용 논란’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구조의 왜곡된 측면을 잘 보여준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는 미국이 자신의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주한미군에 배치해 운용하려는 무기다. 미국은 한반도 사드를 통해 대중국·대북 압박을 강화하면서 한국을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체제의 충실한 하위 파트너로 묶어두려 한다.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적어도 한국민에 관한 한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인구의 절반과 우리나라 주요 시설이 몰려 있는 수도권이 사드 사정거리 밖에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사드 성능을 전적으로 믿더라도 이 값비싼 무기가 주로 방어할 대상은 주한미군이다. ‘한국을 지켜주기 위한 사드이니 한국이 돈을 모두 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얼토당토않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중국의 보복이라는 대가까지 치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기존 합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거센 반발 속에서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사드 비용 재협상’ 언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라는 ‘봉’을 상대로 한 미국의 무기장사는 익숙한 패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통해 한반도 위기 수준을 끌어올린 배경에 사드 비용 압박 의도가 있다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그러잖아도 지난 10년 동안 36조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도입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안보 불안을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게 바로 안보 장사다.

미국만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건 아니다. 일본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에 실패한 지난 29일 전쟁이 일어난 듯 일부 지하철과 철도의 운행을 일시 중단했다. 공포심 조성은 아베 신조 정부가 밀어붙이는 군국주의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애초 한반도 4월 위기설을 처음 부각한 것도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 내 일본인 대피 계획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평시 상황에서도 해상자위대가 미국 함선을 보호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정도 차이는 있으나 중국 또한 다를 바 없다. 최근 두 번째 항공모함을 띄우는 등 해군력 강화에 집중해온 중국은 미국·일본의 공세적 태도와 한반도 안보 불안을 빌미로 삼는다.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과잉 대응은 국내 여론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최대 안보 장사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눈에 보이는 외부 위협과 이에 맞서기 위한 내부 결속은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태생적으로 정통성이 취약한 김정은 정권은 권력 기반 유지를 위해서도 위기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안보 장사는 국내 일부 보수세력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책임은 물론 사드 갈등마저 야당 후보에 대한 종북 색깔론 공격으로 연결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인다.

안보 장사는 불안한 한반도 정세에 기생한다. 그럼으로써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새 갈등을 만들어낸다. 최근 안보 장사 행태가 만연하는 데는 권력이행기를 지나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조정 역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많은 부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곧 구성될 새 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새 정부가 우선하여서 해야 할 일은 갈등 소지를 줄이고 북한 핵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먼저 사드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한 중국과의 갈등과 한-미 비용 논란 등은 피할 수 없다. 이를 무릅쓰고 사드 배치를 강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존 합의를 바꾸는 데 대한 부담은 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새롭게 논의할 여지는 충분하다. 사드 장비 철수 비용 정도는 우리가 부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문제의 한가운데에 핵 문제가 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 정권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핵화가 이뤄진다는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관련국들이 자신의 이익만 앞세워서는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기 어렵다. 핵 문제는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지향점을 명확히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대북한 대화를 언급하는 등 이전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금과 같은 각국 행태는 한반도·동북아의 안보구조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 이런 흐름을 역전시켜 방향을 바로잡을 주체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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