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라는 제목의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2주일에 대한 다수 국민의 정서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이 실제로 뜻하는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다’가 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만만찮은 상황에서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개혁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민과 함께 가려는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대찬’ 여성의 요직 등용도 참신하다. 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다. 귀추를 대개 짐작할 수 있는 국내 분야보다 외교·안보 분야가 더 그렇다. 이전 정권이 남긴 ‘안보 적폐’는 심각하다. 북한 핵 문제 악화와 한반도·동북아 대결구도 심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 새 불씨가 된 한-일 ‘위안부’ 합의, 더 심각해진 방위사업 비리 등이 모두 우리 외교·안보의 몸통을 뒤흔든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가 부적절하고 부실한 정책에 있었다는 사실은 세계 10위권 국력으로 평가되는 우리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 그래서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안보를 정치화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안보 장사꾼 심리와 외교·안보 사안을 신비화하는 ‘안보신화’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목표는 분명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평화통일 기반 확대, 한반도·동북아의 평화구조 구축과 공존공영, 지구촌 과제에 대한 기여 증대 등이 그것이다. 모두 행동의 폭을 제한하는 안보신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사드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인 1990년대부터 전지구적 엠디(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꾀해왔다. 사드는 그 일부분인 동아시아 엠디의 한 축에 해당한다. 곧 사드의 기본 성격은 미국이 군사 패권 유지·강화라는 전략적 목적에 따라 운용하는 미국의 무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절실한 필요에 따라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하는 것처럼 여론을 오도했다. 나아가 정부 안팎의 안보보수파들은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강변해왔다. 이는 ‘사드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사드만능론과 ‘사드 배치 재논의는 한-미 동맹의 파괴’ 등의 주장과 함께 사드신화를 이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드 비용 10억달러 한국 부담’ 요구는 이런 신화에 편승한 움직임이다. 사드든 무엇이든 우리 안보와 국가 전략에 꼭 필요한 무기라고 판단되면 스스로 만들거나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나라가 시비를 걸더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하지만 사드는 출발부터 그런 무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왜곡된 논리를 밀어붙이다 보니 갈수록 부작용이 커진다. 지금 신화의 막을 벗겨내고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전체가 꼬일 수 있다. 한-미 동맹은 사드 배치 재논의로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여러 안보 적폐는 같은 뿌리를 갖는다. ‘미국이라는 강한 후견인한테 철저하게 기대야 하는 게 우리 운명’이라는 신화가 그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과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에 방해가 되는 한-일 갈등을 덮으려고 위안부 합의가 졸속으로 이뤄졌고, 사드 배치 대못박기가 시도됐다. 끊이지 않는 방위사업 비리의 배경에도 안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손쉽게 미국 무기 도입에서 출구를 찾는 행태가 있다. 안보신화는 우리 역량을 키우고 한반도·동북아 관련 사안을 국가 비전에 맞게 풀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신화에 매몰되다 보니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안보허무주의까지 나타난다. 이런 심리는 북한의 과대망상적인 핵강국 행세와 맞물려 한반도 안보구조 악화를 채찍질한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명확한 목표를 향해 가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도 우리 운명을 지켜주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필수지만 우리가 미국의 종속변수로만 여겨지는 한 다른 관련국도 우리를 진지하게 존중할 이유가 없다. 얼마 전부터 한-중, 한-일 관계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우리 책임이 적잖다. 문재인 정부 5년의 외교·안보 정책을 내다보면 사드 문제로 시작해 핵 문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핵 문제 해결에 필수인 미-중 협력만 해도 사드 갈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사드신화를 빨리 벗겨내지 못하면 모든 게 어그러질 수 있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문재인표 외교·안보, ‘사드신화’부터 벗겨내야 |
대기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라는 제목의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2주일에 대한 다수 국민의 정서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이 실제로 뜻하는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다’가 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만만찮은 상황에서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개혁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민과 함께 가려는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대찬’ 여성의 요직 등용도 참신하다. 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다. 귀추를 대개 짐작할 수 있는 국내 분야보다 외교·안보 분야가 더 그렇다. 이전 정권이 남긴 ‘안보 적폐’는 심각하다. 북한 핵 문제 악화와 한반도·동북아 대결구도 심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 새 불씨가 된 한-일 ‘위안부’ 합의, 더 심각해진 방위사업 비리 등이 모두 우리 외교·안보의 몸통을 뒤흔든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가 부적절하고 부실한 정책에 있었다는 사실은 세계 10위권 국력으로 평가되는 우리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 그래서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안보를 정치화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안보 장사꾼 심리와 외교·안보 사안을 신비화하는 ‘안보신화’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목표는 분명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평화통일 기반 확대, 한반도·동북아의 평화구조 구축과 공존공영, 지구촌 과제에 대한 기여 증대 등이 그것이다. 모두 행동의 폭을 제한하는 안보신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사드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인 1990년대부터 전지구적 엠디(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꾀해왔다. 사드는 그 일부분인 동아시아 엠디의 한 축에 해당한다. 곧 사드의 기본 성격은 미국이 군사 패권 유지·강화라는 전략적 목적에 따라 운용하는 미국의 무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절실한 필요에 따라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하는 것처럼 여론을 오도했다. 나아가 정부 안팎의 안보보수파들은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강변해왔다. 이는 ‘사드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사드만능론과 ‘사드 배치 재논의는 한-미 동맹의 파괴’ 등의 주장과 함께 사드신화를 이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드 비용 10억달러 한국 부담’ 요구는 이런 신화에 편승한 움직임이다. 사드든 무엇이든 우리 안보와 국가 전략에 꼭 필요한 무기라고 판단되면 스스로 만들거나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나라가 시비를 걸더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하지만 사드는 출발부터 그런 무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왜곡된 논리를 밀어붙이다 보니 갈수록 부작용이 커진다. 지금 신화의 막을 벗겨내고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전체가 꼬일 수 있다. 한-미 동맹은 사드 배치 재논의로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여러 안보 적폐는 같은 뿌리를 갖는다. ‘미국이라는 강한 후견인한테 철저하게 기대야 하는 게 우리 운명’이라는 신화가 그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과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에 방해가 되는 한-일 갈등을 덮으려고 위안부 합의가 졸속으로 이뤄졌고, 사드 배치 대못박기가 시도됐다. 끊이지 않는 방위사업 비리의 배경에도 안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손쉽게 미국 무기 도입에서 출구를 찾는 행태가 있다. 안보신화는 우리 역량을 키우고 한반도·동북아 관련 사안을 국가 비전에 맞게 풀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신화에 매몰되다 보니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안보허무주의까지 나타난다. 이런 심리는 북한의 과대망상적인 핵강국 행세와 맞물려 한반도 안보구조 악화를 채찍질한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명확한 목표를 향해 가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도 우리 운명을 지켜주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필수지만 우리가 미국의 종속변수로만 여겨지는 한 다른 관련국도 우리를 진지하게 존중할 이유가 없다. 얼마 전부터 한-중, 한-일 관계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우리 책임이 적잖다. 문재인 정부 5년의 외교·안보 정책을 내다보면 사드 문제로 시작해 핵 문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핵 문제 해결에 필수인 미-중 협력만 해도 사드 갈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사드신화를 빨리 벗겨내지 못하면 모든 게 어그러질 수 있다. jkim@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