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말 폭탄’이 더 거세졌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으로 비하하면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다. 19일(미국시각)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다. ‘대북 무력행사를 포함해 모든 옵션(선택지)을 갖고 있다’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에 있는 발언이지만, ‘완전 파괴’의 대상이 북한 전체라는 점에서 위협 수준이 높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는 구체적인 해법에서 새로운 내용이 없다. 대북 제재·압박 강화를 국제사회에 촉구한 게 전부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고 국제사회의 결속을 꾀할 좋은 기회였음에도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데 그친 것이다. 그가 이란 정부를 “거짓된 민주주의를 가장한 부패한 독재정권”으로 비난하며 핵 합의 파기를 경고한 것도 문제가 많은 일방적 태도다. 이란이 핵 합의를 잘 지켜왔음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과장된 대북 군사 위협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보다 핵·미사일에 더 매달리게 하고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강화가 북한 체제의 앞날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군사적 수단으로 핵 문제를 풀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발언이 중국·러시아에 대한 압박용이라고 하더라도 겁주기식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21일로 예정돼 있다. 이번 연설은 7월6일 독일 베를린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 구상’(베를린 구상)의 큰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6차 핵실험 등 최근 상황을 반영하는 ‘뉴욕 선언’이 될 것이다. 베를린 구상의 내용은 훌륭하다. 평화적인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 건설 등은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역사적 과제다.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제시된 ‘북한 정권 붕괴, 흡수통일, 인위적 통일 추진’ 배제와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 등도 온당하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치밀한 방법론과 구심력 있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선언은 빈말에 그친다. 그러잖아도 핵 문제 해결에 큰 책임이 있는 미국 대통령이 말 폭탄으로 오히려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때다. 그동안 정부는 평화적 비핵화 역량을 키워가는 주도력도, 우리 입지를 넓혀가는 외교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비난 발언으로 불거진 외교·안보 진용 내분은 하나의 징표일 뿐이다. 문 특보를 두고 ‘개탄스럽다’며 ‘상대해선 안 될 사람’이라고 한 송 장관의 발언은 그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김정은 참수작전’이나 전술핵 재배치 문제에 대한 송 장관의 공개 언급도 섣부르다. 문 특보 역시 외교·안보 진용의 한 사람으로서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심을 잡고 정책을 조율해야 할 청와대 안보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각 부서와 청와대, 자문 그룹 등이 따로 논다면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니다. 늦기 전에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 우선 인적 정비가 필요하다. 전략적 시야가 필요한 자리가 있고 실천력과 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곳이 있다. 현재의 인사가 과연 최선인지 재검토해야 한다. 기회를 놓치면 남은 임기 내내 큰 부담이 된다.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안보 진용 전체가 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중심 없이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리는 식이어서는 역량을 축적할 수도,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 비핵화 방안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도 필수다. 북한 핵 문제는 단기적으로 풀 수 없는 사안이 됐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 흐름 사이에서 분열과 적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를 방치한다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달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고 협상 동력을 꾸준히 키우는 것이 평화적 비핵화의 전제조건이다. 협상의 출발점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장하는 ‘쌍중단’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든 시도의 근본에 튼튼한 한-미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과 함께 협상 방안을 만들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내년 초 새로운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시한이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트럼프의 ‘말 폭탄’과 문재인의 ‘중심 잡기’ |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말 폭탄’이 더 거세졌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으로 비하하면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다. 19일(미국시각)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다. ‘대북 무력행사를 포함해 모든 옵션(선택지)을 갖고 있다’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에 있는 발언이지만, ‘완전 파괴’의 대상이 북한 전체라는 점에서 위협 수준이 높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는 구체적인 해법에서 새로운 내용이 없다. 대북 제재·압박 강화를 국제사회에 촉구한 게 전부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고 국제사회의 결속을 꾀할 좋은 기회였음에도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데 그친 것이다. 그가 이란 정부를 “거짓된 민주주의를 가장한 부패한 독재정권”으로 비난하며 핵 합의 파기를 경고한 것도 문제가 많은 일방적 태도다. 이란이 핵 합의를 잘 지켜왔음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과장된 대북 군사 위협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보다 핵·미사일에 더 매달리게 하고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강화가 북한 체제의 앞날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군사적 수단으로 핵 문제를 풀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발언이 중국·러시아에 대한 압박용이라고 하더라도 겁주기식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21일로 예정돼 있다. 이번 연설은 7월6일 독일 베를린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 구상’(베를린 구상)의 큰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6차 핵실험 등 최근 상황을 반영하는 ‘뉴욕 선언’이 될 것이다. 베를린 구상의 내용은 훌륭하다. 평화적인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 건설 등은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역사적 과제다. 대북정책의 원칙으로 제시된 ‘북한 정권 붕괴, 흡수통일, 인위적 통일 추진’ 배제와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 등도 온당하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치밀한 방법론과 구심력 있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선언은 빈말에 그친다. 그러잖아도 핵 문제 해결에 큰 책임이 있는 미국 대통령이 말 폭탄으로 오히려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때다. 그동안 정부는 평화적 비핵화 역량을 키워가는 주도력도, 우리 입지를 넓혀가는 외교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비난 발언으로 불거진 외교·안보 진용 내분은 하나의 징표일 뿐이다. 문 특보를 두고 ‘개탄스럽다’며 ‘상대해선 안 될 사람’이라고 한 송 장관의 발언은 그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김정은 참수작전’이나 전술핵 재배치 문제에 대한 송 장관의 공개 언급도 섣부르다. 문 특보 역시 외교·안보 진용의 한 사람으로서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심을 잡고 정책을 조율해야 할 청와대 안보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각 부서와 청와대, 자문 그룹 등이 따로 논다면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니다. 늦기 전에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 우선 인적 정비가 필요하다. 전략적 시야가 필요한 자리가 있고 실천력과 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곳이 있다. 현재의 인사가 과연 최선인지 재검토해야 한다. 기회를 놓치면 남은 임기 내내 큰 부담이 된다.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안보 진용 전체가 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중심 없이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리는 식이어서는 역량을 축적할 수도,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 비핵화 방안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도 필수다. 북한 핵 문제는 단기적으로 풀 수 없는 사안이 됐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 흐름 사이에서 분열과 적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를 방치한다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달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고 협상 동력을 꾸준히 키우는 것이 평화적 비핵화의 전제조건이다. 협상의 출발점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장하는 ‘쌍중단’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든 시도의 근본에 튼튼한 한-미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과 함께 협상 방안을 만들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내년 초 새로운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시한이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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