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최근 나온 가장 그럴듯한 북한 핵 문제 해법은 ‘90일 휴지기’ 방안이다. 이 안은 미국이 유엔 안보리의 전면 지원을 얻어 90일 동안의 ‘휴지기’를 북한에 제안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 기간에 미국은 새 대북 제재를 하지 않고 북한은 추가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 뒤, 6자회담 대표들이 만나 2005년 9·19 공동성명에 기초한 완전한 대화로 복귀할 수 있는지 탐색하자는 것이다. 제안자는 미국 하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 출신인 도널드 맨줄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이다. 이 안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장하는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보다 출발이 쉽고, 다음 단계를 위한 탐색 시간을 갖는 장점이 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폭탄 충돌로 위기가 고조될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내년 초까지 이어져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되면 위기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은 거의 필연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방안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는 나라 안팎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협정을 ‘불인정’하고 의회에 대안 마련을 떠넘겼다. 이는 그가 진지하게 핵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국내 지지층 결속을 겨냥한 정치적 행동을 더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은 2015년 협정 타결 이후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협정을 인정하지 않는 건 대북 협상에도 별 흥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다른 안보리 이사국과 유럽 나라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상반되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협정을 깨더라도 이란이 동조하지 않으면 협정은 어쨌든 굴러간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에서는 이런 구도마저도 성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풀리지 않는 한 어떤 핵 협정도 나올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이 아니라 트럼프 본인의 이익에 집중하는 ‘트럼프 우선주의’임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그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대북 대화를 얘기하면 트위터를 통해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면박을 주고, ‘폭풍 속의 고요’ ‘최후의 선택’ ‘전면 파괴’ 등의 위협적 용어로 군사조처를 암시한다. 그는 이런 행동을 통해 기존 정치 질서를 불신하는 국내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과시하려 한다. 한반도의 일정한 긴장과 대북 무력시위는 미국 군산복합체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한국과 일본을 확실하게 포섭하는 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군수산업은 트럼프 정권 들어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다. 트럼프 우선주의가 지속될 경우 우리로선 두 가지 가능성이 크게 우려된다. 우선 북한 핵 문제가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악화 일로를 걷기 쉽다. 북한은 핵무장 외엔 대안이 없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를 북한의 나쁜 의도로 몰아붙여버리면 논리가 간단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핵 문제는 새로운 차원으로 비화할 것이다. 해법의 실마리는 미국과 북한이 마주 앉는 데서 나올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더 우려되는 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모순을 전가하기 위해 외교·안보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유례없이 낮은 임기 초반 지지율을 보이며 반대 세력이 계속 늘고 있다. ‘러시아 추문’에 대한 특검 조사 결과가 나올 내년 봄쯤에는 그에 대한 탄핵 움직임도 커질 것이다. 이런 수모를 그대로 감수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황을 뒤집으려 할 것이고, 그 가운데 대외 군사행동이 포함된다면 중동과 동아시아가 1순위다.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성 추문이 한창일 때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테러 기지를 갑자기 폭격한 바 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명확한 전략과 정책, 강한 실천 의지가 필요한 때다. 미국의 힘을 반드시 빌려야 하지만 미국에만 맡겨놔서는 결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게 북한 핵 문제다. 우리의 강한 외교가 없다면 어떤 한반도 관련국도 새로운 길로 가려 하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다음 달 초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한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주창한 ‘한반도 문제 운전자’답게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다못해 90일 휴지기 같은 어렵지 않은 제안이 왜 미국에서 나와야 하는가.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트럼프 우선주의’ 넘어야 핵 해법 나온다 |
대기자 최근 나온 가장 그럴듯한 북한 핵 문제 해법은 ‘90일 휴지기’ 방안이다. 이 안은 미국이 유엔 안보리의 전면 지원을 얻어 90일 동안의 ‘휴지기’를 북한에 제안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 기간에 미국은 새 대북 제재를 하지 않고 북한은 추가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 뒤, 6자회담 대표들이 만나 2005년 9·19 공동성명에 기초한 완전한 대화로 복귀할 수 있는지 탐색하자는 것이다. 제안자는 미국 하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 출신인 도널드 맨줄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이다. 이 안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장하는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보다 출발이 쉽고, 다음 단계를 위한 탐색 시간을 갖는 장점이 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폭탄 충돌로 위기가 고조될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내년 초까지 이어져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되면 위기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은 거의 필연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방안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는 나라 안팎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협정을 ‘불인정’하고 의회에 대안 마련을 떠넘겼다. 이는 그가 진지하게 핵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국내 지지층 결속을 겨냥한 정치적 행동을 더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은 2015년 협정 타결 이후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협정을 인정하지 않는 건 대북 협상에도 별 흥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다른 안보리 이사국과 유럽 나라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상반되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협정을 깨더라도 이란이 동조하지 않으면 협정은 어쨌든 굴러간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에서는 이런 구도마저도 성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풀리지 않는 한 어떤 핵 협정도 나올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이 아니라 트럼프 본인의 이익에 집중하는 ‘트럼프 우선주의’임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그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대북 대화를 얘기하면 트위터를 통해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면박을 주고, ‘폭풍 속의 고요’ ‘최후의 선택’ ‘전면 파괴’ 등의 위협적 용어로 군사조처를 암시한다. 그는 이런 행동을 통해 기존 정치 질서를 불신하는 국내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과시하려 한다. 한반도의 일정한 긴장과 대북 무력시위는 미국 군산복합체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한국과 일본을 확실하게 포섭하는 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군수산업은 트럼프 정권 들어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다. 트럼프 우선주의가 지속될 경우 우리로선 두 가지 가능성이 크게 우려된다. 우선 북한 핵 문제가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악화 일로를 걷기 쉽다. 북한은 핵무장 외엔 대안이 없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를 북한의 나쁜 의도로 몰아붙여버리면 논리가 간단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핵 문제는 새로운 차원으로 비화할 것이다. 해법의 실마리는 미국과 북한이 마주 앉는 데서 나올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더 우려되는 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모순을 전가하기 위해 외교·안보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유례없이 낮은 임기 초반 지지율을 보이며 반대 세력이 계속 늘고 있다. ‘러시아 추문’에 대한 특검 조사 결과가 나올 내년 봄쯤에는 그에 대한 탄핵 움직임도 커질 것이다. 이런 수모를 그대로 감수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황을 뒤집으려 할 것이고, 그 가운데 대외 군사행동이 포함된다면 중동과 동아시아가 1순위다.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성 추문이 한창일 때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테러 기지를 갑자기 폭격한 바 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명확한 전략과 정책, 강한 실천 의지가 필요한 때다. 미국의 힘을 반드시 빌려야 하지만 미국에만 맡겨놔서는 결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게 북한 핵 문제다. 우리의 강한 외교가 없다면 어떤 한반도 관련국도 새로운 길로 가려 하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다음 달 초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한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주창한 ‘한반도 문제 운전자’답게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다못해 90일 휴지기 같은 어렵지 않은 제안이 왜 미국에서 나와야 하는가.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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