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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9 17:09 수정 : 2017.11.29 19:11

김지석
대기자

북한이 29일 미국 동부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했다. 지난 9월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발사한 이후 75일 동안의 ‘침묵’이 결국 새로운 시도를 위한 준비 기간이었던 셈이다. 미사일 발사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북 접근 방식에서 “바뀌는 것은 없다”고 했지만, 파장은 만만찮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기본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이 더 강화되는 것을 전제로, 앞으로 북한의 행동 방향은 크게 셋이다. 우선, 수위를 더 높여 새 도발을 할 수 있다. 미국령 괌 부근이나 태평양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새로운 내용의 핵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지난여름 이상의 파국적 양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관련국들에 대한 심각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서도 큰 모험이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발사 직후 “오늘 비로소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됐다”고 선언한 만큼 ‘관망 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 시간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보고 정세 변화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북한 당국자들은 최근 ‘미국과 실질적 힘의 균형을 이루는 최종 목표를 향한 길에서 거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고 얘기해왔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거친 대치 상태에서 벗어나 국면 전환을 모색할 수 있다. 역대 최강의 제재·압박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경우다. 특히 갈수록 나빠지는 대중국 관계가 북한 체제에 주는 부담은 크다. 또한 북한으로서도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있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한 차례는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도해보는 게 합리적이다.

어느 경우든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단계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때일수록 한반도 관련국들은 단호하면서도 신중하게 정세를 관리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비핵화 원칙에서는 엄격해야 하지만 방법에서는 유연성과 포괄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이 근원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핵무기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이를 단순한 수사로 볼 게 아니라, 안보와 핵무기 포기를 맞바꿀 가능성을 키워가는 단서로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북한 정권의 교체와 붕괴, 한반도 통일 가속화, 38선 이북으로의 미군 파견 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입장은 중국이 주장하고 러시아가 지지하는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과 본질에서 충돌하지 않는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상대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지금의 대치 상황과는 별개로, 김정은 정권뿐만 아니라 트럼프 정부도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여전히 미심쩍다. 미국 정부가 제시한 대화 전제조건인 ‘핵·미사일 동결을 비롯한 북한의 불가역적인 비핵화 의지’도 문턱이 너무 높다. 그래서 대화 시도 자체가 마치 실패를 예상하면서도 대결 명분 확보를 위해 상대를 슬쩍 건드려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북한이 위의 첫째 길로 간다면 더 그럴 것이다. 둘째·셋째 경우라 하더라도 가능한 협상의 높낮이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최근 잇따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한 대응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주 300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이집트 시나이반도 이슬람사원 테러와 관련해 국제사회는 이집트 정부 쪽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극단주의자들이 사태의 주범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지 분위기를 악화시켜온 정부 책임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의 ‘강경 일변도 군사대응’과 맞물려 시나이반도에서 무려 1700건의 테러가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집트 정부의 잘못은 만만찮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이런 식으로 뒤엉켜선 안 된다.

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한 특효약은 없다. 강경 일변도 대응은 북한 체제가 짧은 시일 안에 붕괴하지 않는 한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 정부가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은 불신의 틈을 메워 협상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그 속에 모든 문제를 용해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고 근원적 해결을 위한 ‘끝의 시작’을 본격화해야 한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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