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18일(미국시각)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보면, 세계가 바뀌는 속도보다 미국이 더 빨리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주류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추세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맞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의 지구촌을 ‘경쟁적 세계’로 파악한 세계관이다. 여기에는 유일 패권국을 자임하던 자신감 대신 불안감과 조바심이 작용한다. 냉전 종식 이후 20여년에 걸친 이전 정부 정책 기조는 “경쟁자에 대한 관여와 그들의 국제 제도 및 지구촌 경제 질서 편입을 통해 그들을 유순한 행위자와 믿을 만한 동반자로 바꿀 수 있다”는 그릇된 가정을 했다는 이유로 부정된다.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다. 두 나라는 “미국의 힘, 영향력, 이익에 도전하며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침해하려고 시도하는” 경쟁자(rival 또는 competitor)로 규정된다. 여기에 북한과 이란이라는 두 불량국가(rogue state), 지하드 테러리스트와 국제범죄조직 등 ‘국제위협집단’이 추가된다. 이들과의 대결은 일시적 추세나 돈 문제가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헌신을 요구하는 장기 국가 과제다. 따라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며 무엇보다 강한 군사력과 단호한 태도가 필수다. 여기까지 보면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선악이 분명한 흑백논리와 힘을 앞세운 일방주의라는 면에서, 이전 조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으로 절정을 이뤘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을 계승한다. 실제로 네오콘 및 유대계 강경파, 이들에 호응하는 기독교 우파 세력은 트럼프 정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네오콘과 더불어 또 다른 기둥을 이루는 것은 경제국수주의다. 보고서는 지금의 경제 질서가 미국에 대해 “자유롭고 공정하고 호혜적”이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부패를 깨부수고, 양자협정을 통한 새로운 무역·투자 협정을 추구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 새 경제 질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국제사회가 수십년에 걸쳐 합의한 기후변화 정책도 ‘반성장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중국은 여기서도 제1의 경쟁자로 꼽히지만, 경제국수주의에서는 원칙적으로 적과 동지가 고정돼 있지 않다.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면 경쟁자이고 도움이 되면 동반자다. 오랜 동맹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네오콘적 사고와 경제국수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서 머리말에서 “미국은 아주 위험한 세계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의 재생과 미국 지도력의 재현은 전세계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국수주의는 미국 패권을 전제로 하는 대결 논리와 함께 갈 수 없으며, 이런 시도가 미국의 지도력을 높일 수도 없다. 올해 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11개월을 보더라도 이는 분명하다. 이 국가전략을 두고 미국이 낡은 냉전 논리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지구촌의 비판도 거세다. 국가 사이 또는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공조보다 개별 국가의 경쟁과 대결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용적이고 앞선 경제력이 있었기에 냉전 시기 미국의 지도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냉전 부활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냉전 때와 같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미국우선주의가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제국수주의에 대응하면서 효과적인 북핵 해법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게 됐다. 핵 문제 해결 노력에서 바람직한 구도는 미국의 적극적 의지와 높은 수준의 미-중 협력이 함께 구현되는 것이다. 미-중 관계의 기본이 경쟁과 대결로 굳어진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보고서가 북 핵·미사일을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지목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했지만 방법론에서는 전혀 새로운 게 없다. 북한과 이란을 불량국가로 명시한 것 또한 평화적 핵 문제 해결의 전제가 되는 대화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우리 정부는 ‘안정화와 재건을 위한 한국군 파병’이라는 고육책을 쓰면서 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협력을 끌어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정답일 수는 없는 방식이지만 문제의식에서는 그때의 치열함이 요구되는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했지만, 명확한 방향 설정과 창의적 노력 없이는 새 아침이 오지 않는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잘못된 만남, 네오콘과 경제국수주의 |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18일(미국시각)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보면, 세계가 바뀌는 속도보다 미국이 더 빨리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주류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추세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맞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의 지구촌을 ‘경쟁적 세계’로 파악한 세계관이다. 여기에는 유일 패권국을 자임하던 자신감 대신 불안감과 조바심이 작용한다. 냉전 종식 이후 20여년에 걸친 이전 정부 정책 기조는 “경쟁자에 대한 관여와 그들의 국제 제도 및 지구촌 경제 질서 편입을 통해 그들을 유순한 행위자와 믿을 만한 동반자로 바꿀 수 있다”는 그릇된 가정을 했다는 이유로 부정된다.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다. 두 나라는 “미국의 힘, 영향력, 이익에 도전하며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침해하려고 시도하는” 경쟁자(rival 또는 competitor)로 규정된다. 여기에 북한과 이란이라는 두 불량국가(rogue state), 지하드 테러리스트와 국제범죄조직 등 ‘국제위협집단’이 추가된다. 이들과의 대결은 일시적 추세나 돈 문제가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헌신을 요구하는 장기 국가 과제다. 따라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며 무엇보다 강한 군사력과 단호한 태도가 필수다. 여기까지 보면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선악이 분명한 흑백논리와 힘을 앞세운 일방주의라는 면에서, 이전 조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으로 절정을 이뤘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을 계승한다. 실제로 네오콘 및 유대계 강경파, 이들에 호응하는 기독교 우파 세력은 트럼프 정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네오콘과 더불어 또 다른 기둥을 이루는 것은 경제국수주의다. 보고서는 지금의 경제 질서가 미국에 대해 “자유롭고 공정하고 호혜적”이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부패를 깨부수고, 양자협정을 통한 새로운 무역·투자 협정을 추구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 새 경제 질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국제사회가 수십년에 걸쳐 합의한 기후변화 정책도 ‘반성장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중국은 여기서도 제1의 경쟁자로 꼽히지만, 경제국수주의에서는 원칙적으로 적과 동지가 고정돼 있지 않다.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면 경쟁자이고 도움이 되면 동반자다. 오랜 동맹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네오콘적 사고와 경제국수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서 머리말에서 “미국은 아주 위험한 세계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의 재생과 미국 지도력의 재현은 전세계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국수주의는 미국 패권을 전제로 하는 대결 논리와 함께 갈 수 없으며, 이런 시도가 미국의 지도력을 높일 수도 없다. 올해 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11개월을 보더라도 이는 분명하다. 이 국가전략을 두고 미국이 낡은 냉전 논리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지구촌의 비판도 거세다. 국가 사이 또는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공조보다 개별 국가의 경쟁과 대결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용적이고 앞선 경제력이 있었기에 냉전 시기 미국의 지도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냉전 부활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냉전 때와 같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미국우선주의가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제국수주의에 대응하면서 효과적인 북핵 해법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게 됐다. 핵 문제 해결 노력에서 바람직한 구도는 미국의 적극적 의지와 높은 수준의 미-중 협력이 함께 구현되는 것이다. 미-중 관계의 기본이 경쟁과 대결로 굳어진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보고서가 북 핵·미사일을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지목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했지만 방법론에서는 전혀 새로운 게 없다. 북한과 이란을 불량국가로 명시한 것 또한 평화적 핵 문제 해결의 전제가 되는 대화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우리 정부는 ‘안정화와 재건을 위한 한국군 파병’이라는 고육책을 쓰면서 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협력을 끌어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정답일 수는 없는 방식이지만 문제의식에서는 그때의 치열함이 요구되는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했지만, 명확한 방향 설정과 창의적 노력 없이는 새 아침이 오지 않는다. jkim@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