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북한 핵 문제가 난제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압박 속에서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구축한 핵·미사일 체제를 자진해서 포기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관련국들의 잘 조율된 지속적 대응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일본은 민주국가여서 상황과 정권의 향배에 따라 정책이 영향을 받는다. 이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해 인식과 대응이 달라지는 것은 문제다.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주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체제 보호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 아래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해 12월 북한의 핵 보유를 적화통일 의지와 연관시켰다. 우리나라 극우 성향 인사들이 해온 발언을 이제 미국 정부 고위 관리가 되풀이한다. ‘핵 적화통일론’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근거가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국내 인사들은 북한이 핵으로 위협할 경우 핵이 없는 우리나라는 결국 따를 수밖에 없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한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우리의 45분의 1 수준인 북한이 종합국력에서 우리와 비슷하다는 이상한 분석도 등장한다. 북한의 ‘핵 대국’ 주장에 맞장구치는 듯한 과대포장이다. 나아가 이들은 한-미 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대한 불안감을 부각한다. ‘북한의 악마화’는 미국 강경파에게 정치적으로 유용한 카드다. ‘강한 미국’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첫해 동안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룬 것은 거의 없다. 북한 문제는 대외 정책의 틀을 분명히 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좋은 소재다. 북한 핵 문제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가 될 거라는 말도 나온다. 한반도 관련 사안과 관련해 국무부를 제치고 사실상 실권을 휘두르는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등이 대북 군사행동 카드를 계속 언급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이 북한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로 보고 공세를 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떤 방식의 대북 접근이 핵 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지에 대해선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온 한-미 정상의 합의가 ‘최대한의 제재·압박’과 ‘최대한의 관여’의 조합이다. 북한 체제를 힘으로 붕괴시키겠다는 게 아니라면 제재·압박만큼이나 관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여는 북한 정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적이지만 말이 통하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접촉은 그 중요한 출발점이다. 남북 단일팀 등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있으나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부담은 북한 쪽이 더 크다. 북한으로선 고립을 완화하려고 한 일이 밑천만 내보이고 더 큰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북한이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나와 투명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공조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지만, 공통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무시할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미국시각)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지난 경험은 우리에게 안주와 양보는 침략과 도발을 불러올 뿐임을 가르쳐줬다”며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북 양자 접촉이라는 이전의 정책은 효과가 없었다’고 단언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02년 초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내세우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2000년에 처음 나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는 앞으로 김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으세요, 저는 조수석에 앉겠습니다’라고 했다. 이해 10월 우리 정부가 지원해 북한의 2인자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수교 직전까지 간 두 나라 관계는 곧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기자 급속히 냉각되었고, 한반도 운전자론도 벽에 부닥쳤다. 북한의 핵 개발 정도는 당시와 현격히 다르지만, 두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그대로 겹친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지자 대북 대화 쪽으로 돌아섰다. 올해 중간선거도 전환점이 될까.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핵 문제 정치화’의 사슬 끊어야 |
대기자 북한 핵 문제가 난제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압박 속에서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구축한 핵·미사일 체제를 자진해서 포기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관련국들의 잘 조율된 지속적 대응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일본은 민주국가여서 상황과 정권의 향배에 따라 정책이 영향을 받는다. 이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해 인식과 대응이 달라지는 것은 문제다.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주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체제 보호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 아래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해 12월 북한의 핵 보유를 적화통일 의지와 연관시켰다. 우리나라 극우 성향 인사들이 해온 발언을 이제 미국 정부 고위 관리가 되풀이한다. ‘핵 적화통일론’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근거가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국내 인사들은 북한이 핵으로 위협할 경우 핵이 없는 우리나라는 결국 따를 수밖에 없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한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우리의 45분의 1 수준인 북한이 종합국력에서 우리와 비슷하다는 이상한 분석도 등장한다. 북한의 ‘핵 대국’ 주장에 맞장구치는 듯한 과대포장이다. 나아가 이들은 한-미 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대한 불안감을 부각한다. ‘북한의 악마화’는 미국 강경파에게 정치적으로 유용한 카드다. ‘강한 미국’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첫해 동안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룬 것은 거의 없다. 북한 문제는 대외 정책의 틀을 분명히 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좋은 소재다. 북한 핵 문제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가 될 거라는 말도 나온다. 한반도 관련 사안과 관련해 국무부를 제치고 사실상 실권을 휘두르는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등이 대북 군사행동 카드를 계속 언급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이 북한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로 보고 공세를 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떤 방식의 대북 접근이 핵 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지에 대해선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온 한-미 정상의 합의가 ‘최대한의 제재·압박’과 ‘최대한의 관여’의 조합이다. 북한 체제를 힘으로 붕괴시키겠다는 게 아니라면 제재·압박만큼이나 관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여는 북한 정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적이지만 말이 통하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접촉은 그 중요한 출발점이다. 남북 단일팀 등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있으나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부담은 북한 쪽이 더 크다. 북한으로선 고립을 완화하려고 한 일이 밑천만 내보이고 더 큰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북한이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나와 투명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공조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지만, 공통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무시할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미국시각)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지난 경험은 우리에게 안주와 양보는 침략과 도발을 불러올 뿐임을 가르쳐줬다”며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북 양자 접촉이라는 이전의 정책은 효과가 없었다’고 단언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02년 초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내세우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2000년에 처음 나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는 앞으로 김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으세요, 저는 조수석에 앉겠습니다’라고 했다. 이해 10월 우리 정부가 지원해 북한의 2인자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수교 직전까지 간 두 나라 관계는 곧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기자 급속히 냉각되었고, 한반도 운전자론도 벽에 부닥쳤다. 북한의 핵 개발 정도는 당시와 현격히 다르지만, 두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그대로 겹친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지자 대북 대화 쪽으로 돌아섰다. 올해 중간선거도 전환점이 될까.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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