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6월 중순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의 수 싸움과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경고한 북한 당국의 16일 담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 협상이 만만찮을 것임을 보여준다. 칼자루를 쥔 쪽은 내놓을 카드가 많은 미국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면, 핵무기의 미국 이전을 포함한 ‘과감하고 신속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이를 두고 리비아 방식이니 우크라이나 방식이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동북아 상황에 잘 들어맞지 않는 방안이다. 이를 넘어선 새로운 ‘한반도 모델’이 요구된다. ‘핵 위협을 없앤다’는 의미만 따진다면 두 방식은 모두 성공했다. 2003년 12월 핵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는 주요 핵 물질·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등 22개월 만에 비핵화를 끝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졸지에 세계 3위 핵보유국이 된 우크라이나 역시 1994년 12월 비핵화에 합의한 뒤 1998년까지 핵무기의 러시아 이전과 핵 시설의 해체를 마쳤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2011년 초 리비아 내전이 발생하자 미국과 유럽연합은 반군 편에서 리비아를 공격한다. 과감하고 신속한 비핵화를 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결국 그해 10월 무참하게 살해된다. 우크라이나도 2014년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가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반도는 독립선언을 거쳐 러시아에 편입된다. 두 나라 모두 핵 폐기가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불안한 상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배경에 핵 폐기를 계기로 한 외세의 자의적인 개입이 있다. 북한은 이를 잘 안다. 북한 핵 무기·물질의 외국 이전은 이른바 핵 군축에 해당하는 북한의 마지막 카드다. 이 단계를 지나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어, 이때쯤이면 북한도 바라는 것을 얻어야 한다. 기존 모델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반도 모델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제사회가 비핵화 합의의 균형을 잡고 이행을 촘촘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리비아의 핵 포기 결정은 2003년 봄 미국·영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급하게 이뤄졌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핵 폐기 대가로 자국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각서를 1994년 12월 미국·러시아·영국과 체결했다. 4억6000만달러의 경제지원도 받았다. 한반도 모델은 우크라이나 방식을 발전시키면 된다. 북한과 미국이 큰 틀의 비핵화 방식을 논의한 뒤 남북·미·중 등 한반도 관련국이 함께 합의하면 된다. 일본·러시아에다 유럽연합까지 포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현실성 있고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다. 리비아는 그에 관한 내용이 빈약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안전보장을 약속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동진)를 추구했고, 러시아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개입을 시도했다. 우크라이나 여론도 양쪽으로 갈라졌다. 평화 정착이 아니라 갈등이 증폭되는 구조다. 북한의 핵 포기가 이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면 합의 자체가 이뤄지기 어렵다. 핵 포기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동북아의 공존공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각국이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법·군사·정치·경제 측면에서 명확히 하는 게 평화체제 구축의 바른길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뢰다. 핵 해법의 원형인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 당시 마지막까지 남은 쟁점이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였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포기 이후에도 핵을 개발할 여지를 두려고 경수로에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북한의 의도는 그보다 에너지 확보에 더해 미국의 선의를 확인하는 데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사안은 결국 ‘북한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타협적인 내용으로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하지만 북-미 사이 불신은 이 성명의 이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지구촌의 최상위 군사·경제 대국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북한 핵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세력 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비핵화 자체만큼이나 평화를 보장하는 전체 구도의 재구축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논의의 촉진자, 약속의 보증자, 세력의 균형자 구실을 해야 한다. 한반도 모델의 성패가 우리의 적극적 역할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비핵화 ‘한반도 모델’ 어떻게 해야 하나 |
대기자 6월 중순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의 수 싸움과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경고한 북한 당국의 16일 담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 협상이 만만찮을 것임을 보여준다. 칼자루를 쥔 쪽은 내놓을 카드가 많은 미국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면, 핵무기의 미국 이전을 포함한 ‘과감하고 신속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이를 두고 리비아 방식이니 우크라이나 방식이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동북아 상황에 잘 들어맞지 않는 방안이다. 이를 넘어선 새로운 ‘한반도 모델’이 요구된다. ‘핵 위협을 없앤다’는 의미만 따진다면 두 방식은 모두 성공했다. 2003년 12월 핵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는 주요 핵 물질·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등 22개월 만에 비핵화를 끝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졸지에 세계 3위 핵보유국이 된 우크라이나 역시 1994년 12월 비핵화에 합의한 뒤 1998년까지 핵무기의 러시아 이전과 핵 시설의 해체를 마쳤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2011년 초 리비아 내전이 발생하자 미국과 유럽연합은 반군 편에서 리비아를 공격한다. 과감하고 신속한 비핵화를 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결국 그해 10월 무참하게 살해된다. 우크라이나도 2014년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가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반도는 독립선언을 거쳐 러시아에 편입된다. 두 나라 모두 핵 폐기가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불안한 상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배경에 핵 폐기를 계기로 한 외세의 자의적인 개입이 있다. 북한은 이를 잘 안다. 북한 핵 무기·물질의 외국 이전은 이른바 핵 군축에 해당하는 북한의 마지막 카드다. 이 단계를 지나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어, 이때쯤이면 북한도 바라는 것을 얻어야 한다. 기존 모델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반도 모델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제사회가 비핵화 합의의 균형을 잡고 이행을 촘촘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리비아의 핵 포기 결정은 2003년 봄 미국·영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급하게 이뤄졌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핵 폐기 대가로 자국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각서를 1994년 12월 미국·러시아·영국과 체결했다. 4억6000만달러의 경제지원도 받았다. 한반도 모델은 우크라이나 방식을 발전시키면 된다. 북한과 미국이 큰 틀의 비핵화 방식을 논의한 뒤 남북·미·중 등 한반도 관련국이 함께 합의하면 된다. 일본·러시아에다 유럽연합까지 포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현실성 있고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다. 리비아는 그에 관한 내용이 빈약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안전보장을 약속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동진)를 추구했고, 러시아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개입을 시도했다. 우크라이나 여론도 양쪽으로 갈라졌다. 평화 정착이 아니라 갈등이 증폭되는 구조다. 북한의 핵 포기가 이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면 합의 자체가 이뤄지기 어렵다. 핵 포기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동북아의 공존공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각국이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법·군사·정치·경제 측면에서 명확히 하는 게 평화체제 구축의 바른길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뢰다. 핵 해법의 원형인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 당시 마지막까지 남은 쟁점이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였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포기 이후에도 핵을 개발할 여지를 두려고 경수로에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북한의 의도는 그보다 에너지 확보에 더해 미국의 선의를 확인하는 데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사안은 결국 ‘북한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타협적인 내용으로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하지만 북-미 사이 불신은 이 성명의 이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지구촌의 최상위 군사·경제 대국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북한 핵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세력 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비핵화 자체만큼이나 평화를 보장하는 전체 구도의 재구축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논의의 촉진자, 약속의 보증자, 세력의 균형자 구실을 해야 한다. 한반도 모델의 성패가 우리의 적극적 역할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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