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im@hani.co.kr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바퀴를 함께 굴리는 역사적 과정이 시작됐다. 이제 이 마차가 멈추거나 뒷걸음질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애초 우리나라가 판을 벌였지만 주된 동력은 북한과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접근이 마차를 출발선에 올려놓았다. 지구촌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현실주의는 이념이나 명분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사고나 행동양식을 말한다. 냉전의 절정기였던 1970년대 초반 과감하게 대중국 수교를 꾀한 미국의 시도가 좋은 사례다. 적과 동지라는 규범적 판단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이런 태도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새 길을 찾는 데 유용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큰 틀에서 현실주의 범주 속에 있다. 하지만 그 내용과 표현방식에선 다른 사례들과 상당히 차이가 나며, 강도와 집중도는 더 높다. 이를 ‘극현실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주의는 상업적이고 초단기적이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결정과 관련해 이념적이거나 전략적인 어떤 이유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그는 “(훈련에) 수천만, 수억 달러를 쓰고 한국으로부터 변제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이른바 자유주의 질서와 동맹·동반자 관계를 강조해온 미국의 과거 접근방식과 판이하다. 이런 발상이 비핵화 협상의 새 경지를 열고 있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는 또한 먼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가 “(비핵화와 관련해) 엄청난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할 때 그 기간은 짧으면 몇 달, 길어도 2년이다. 그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다. 그는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벼랑끝·무제약 현실주의를 추구한다. 그는 이념의 족쇄에선 벗어난 듯하지만, 전례 없는 3중의 벼랑끝에 서 있다. 안보, 경제, 권력이 그것이다. 그에게 체제 안보는 시작이자 끝이다. 체제 안보 수단으로 개발한 핵무기가 안보를 더 위태롭게 하므로, 핵 없이 안보를 얻어내야 하는 딜레마 상황이 그를 괴롭힌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질 높은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제 또한 이른 시일 안에 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탈출구는 더 멀어진다. 김 위원장의 권력도 안보와 경제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안정적 지속을 장담하지 못한다. 핵심 지지층인 젊은 세대가 실망해 돌아서면 비빌 언덕까지 잃을 수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풀 열쇠가 비핵화다. 북한으로선 카드 하나로 여러 효과를 동시에 얻어야 한다. 따라서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북한이 비굴할 정도로 중국에 고개를 숙이며 안전판을 확보하려는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칼날 위에서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은 ‘뇌관이 여럿인 폭탄’이다. 국수주의와 일방주의라는 칼을 마음껏 휘두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불량 초강국’이다. 두 나라의 조합은 비상식적이지만, 조속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지향점은 일치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미국과 북한의 극현실주의에는 좁게 설정한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돌발사태가 잠재해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앞날을 길게 내다보는 전략적 관점도 부족하다. 이런 위험성을 제거하고 내실을 확보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했지만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 지금은 마차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달리도록 해야 할 시기다. 이달 중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초기 조처’까지 합의했다면 좋았겠지만, 신뢰 수준이 그 정도는 되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은 협상을 끌고 가려는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서로 손발을 잘 맞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비핵화-평화체제 일정표 작성 등을 두 나라에만 맡겨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을 움직일 모든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북-미 협상을 촉진하는 역할과 병행해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을 초기부터 적절하게 관여시키는 것은 비핵화-평화체제 합의의 질과 이행 가능성을 높일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칼럼 |
[김지석 칼럼] 미·북의 ‘극현실주의’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
jkim@hani.co.kr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바퀴를 함께 굴리는 역사적 과정이 시작됐다. 이제 이 마차가 멈추거나 뒷걸음질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애초 우리나라가 판을 벌였지만 주된 동력은 북한과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접근이 마차를 출발선에 올려놓았다. 지구촌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현실주의는 이념이나 명분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사고나 행동양식을 말한다. 냉전의 절정기였던 1970년대 초반 과감하게 대중국 수교를 꾀한 미국의 시도가 좋은 사례다. 적과 동지라는 규범적 판단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이런 태도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새 길을 찾는 데 유용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큰 틀에서 현실주의 범주 속에 있다. 하지만 그 내용과 표현방식에선 다른 사례들과 상당히 차이가 나며, 강도와 집중도는 더 높다. 이를 ‘극현실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주의는 상업적이고 초단기적이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결정과 관련해 이념적이거나 전략적인 어떤 이유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그는 “(훈련에) 수천만, 수억 달러를 쓰고 한국으로부터 변제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이른바 자유주의 질서와 동맹·동반자 관계를 강조해온 미국의 과거 접근방식과 판이하다. 이런 발상이 비핵화 협상의 새 경지를 열고 있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는 또한 먼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가 “(비핵화와 관련해) 엄청난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할 때 그 기간은 짧으면 몇 달, 길어도 2년이다. 그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다. 그는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벼랑끝·무제약 현실주의를 추구한다. 그는 이념의 족쇄에선 벗어난 듯하지만, 전례 없는 3중의 벼랑끝에 서 있다. 안보, 경제, 권력이 그것이다. 그에게 체제 안보는 시작이자 끝이다. 체제 안보 수단으로 개발한 핵무기가 안보를 더 위태롭게 하므로, 핵 없이 안보를 얻어내야 하는 딜레마 상황이 그를 괴롭힌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질 높은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제 또한 이른 시일 안에 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탈출구는 더 멀어진다. 김 위원장의 권력도 안보와 경제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안정적 지속을 장담하지 못한다. 핵심 지지층인 젊은 세대가 실망해 돌아서면 비빌 언덕까지 잃을 수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풀 열쇠가 비핵화다. 북한으로선 카드 하나로 여러 효과를 동시에 얻어야 한다. 따라서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북한이 비굴할 정도로 중국에 고개를 숙이며 안전판을 확보하려는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칼날 위에서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은 ‘뇌관이 여럿인 폭탄’이다. 국수주의와 일방주의라는 칼을 마음껏 휘두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불량 초강국’이다. 두 나라의 조합은 비상식적이지만, 조속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지향점은 일치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미국과 북한의 극현실주의에는 좁게 설정한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돌발사태가 잠재해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앞날을 길게 내다보는 전략적 관점도 부족하다. 이런 위험성을 제거하고 내실을 확보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했지만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 지금은 마차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달리도록 해야 할 시기다. 이달 중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초기 조처’까지 합의했다면 좋았겠지만, 신뢰 수준이 그 정도는 되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은 협상을 끌고 가려는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서로 손발을 잘 맞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비핵화-평화체제 일정표 작성 등을 두 나라에만 맡겨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을 움직일 모든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북-미 협상을 촉진하는 역할과 병행해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을 초기부터 적절하게 관여시키는 것은 비핵화-평화체제 합의의 질과 이행 가능성을 높일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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