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또 하나의 나쁜 선례가 만들어졌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지구촌의 큰 흐름이 고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은 인구 5위, 국내총생산(GDP) 8~9위인 지구촌 주요국이다. 남미 지역만 보면 각각 40%씩 차지하는 지도국이다. 최대 가톨릭 나라이자 중국·인도·러시아 등과 함께 브릭스(BRICs)로 주목받아왔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1960~80년대의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정치를 발전시켜온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29년 동안 9개 정당을 전전한 보우소나루는 이번에 아웃사이더(국외자) 정치인을 자처하며 극우 사회자유당 후보로 나와 낙승했다. 그는 공약과 행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빼닮았다. 기성 체제의 무능과 부패를 공격하면서 이민자·원주민·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통해 백인 남성을 결집하고, 전통 가치에 뿌리를 둔 문화정치로 기독교 보수파를 끌어들이는 것이 한 축이다. 다른 축은 감세와 규제 완화, 복지 축소 등으로 재계·상류층과 외국자본의 지지를 얻고, 물리력 강화에 기댄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이어진 경제 불황과 만연한 부패·범죄, 네차례 연임한 좌파 노동자당에 대한 염증이 트럼프주의(Trumpism)의 브라질 점령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보우소나루는 한 해 전 브라질계가 많이 사는 미국 플로리다를 방문해 “내가 브라질에서 말하는 것은 이곳의 트럼프와 비슷하다”며 “내가 당선되면 트럼프는 남반구에서 위대한 동맹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대외정책 공약까지 트럼프의 것을 거의 베꼈다. 반중국·친대만, 주이스라엘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유엔 인권위 탈퇴, 기후변화협약 비판,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대한 거친 공격, 브릭스 나라와 거리 두기 등이 그렇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고문 등 과거 군부정권의 억압 행태를 옹호해온 보우소나루이지만 연방의원을 지낸 27년 동안 이념적 지향이 항상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우고 차베스가 1999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된 직후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차베스를 ‘남미의 희망’으로 치켜세우며 그의 철학을 브라질에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차베스는 그때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을 연임한 대표적인 ‘좌파 포퓰리즘’ 정치인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를 가름하는 것은 이념이나 계급, 빈부격차보다 그 사회의 문화가 얼마나 엄격하거나 느슨한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발전한 사회에서는 선동정치가 통하기 어려운 반면 결속력 있는 공동체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우든 좌든 포퓰리즘이 발붙이기 쉽다는 얘기다. 이는 사고의 편향 또는 이념성이 강한 극우파와 극좌파가 상황에 따라 의외로 쉽게 상대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유를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극좌·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불안과 결핍, 좌절감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아 강한 정체성에 대한 요구가 큰 사회일수록 포퓰리즘이 득세하기 쉽다. 또한 강한 정체성을 오래 경험한 사람일수록 포퓰리즘에 거부감을 덜 느낀다. 이는 왜 우파 포퓰리즘이 상승세에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된다. 지금 지구촌은 오랜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여파, 전통적인 선진국과 신흥국·개도국 사이 세력 전이, 기술과 인구구조의 빠른 변화 등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안감이 커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보우소나루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는 트럼프주의의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결합이다. 물론 트럼프나 동유럽 극우 정권의 공약이 그대로 실현되지 않듯이 보우소나루 역시 앞으로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남미 나라들이 그랬듯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현재의 브라질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자유주의를 멀리까지 밀고 간 이명박 정권과 세미파시즘 행태를 보인 박근혜 정권이 그것이다. 두 정권을 합치고 포퓰리즘의 수준을 높이면 내년 1월1일 출범할 보우소나루 정권의 모습이 된다. 이른바 태극기부대는 보우소나루의 열성 지지자들에 대응한다. 우리 국민은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의 파시즘적 행태를 단죄하고 신자유주의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 브라질을 비롯한 지구촌의 시민들 또한 확산하는 우파 포퓰리즘에 맞서려면 그만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우파 포퓰리즘,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결합 |
대기자 또 하나의 나쁜 선례가 만들어졌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지구촌의 큰 흐름이 고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은 인구 5위, 국내총생산(GDP) 8~9위인 지구촌 주요국이다. 남미 지역만 보면 각각 40%씩 차지하는 지도국이다. 최대 가톨릭 나라이자 중국·인도·러시아 등과 함께 브릭스(BRICs)로 주목받아왔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1960~80년대의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정치를 발전시켜온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29년 동안 9개 정당을 전전한 보우소나루는 이번에 아웃사이더(국외자) 정치인을 자처하며 극우 사회자유당 후보로 나와 낙승했다. 그는 공약과 행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빼닮았다. 기성 체제의 무능과 부패를 공격하면서 이민자·원주민·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통해 백인 남성을 결집하고, 전통 가치에 뿌리를 둔 문화정치로 기독교 보수파를 끌어들이는 것이 한 축이다. 다른 축은 감세와 규제 완화, 복지 축소 등으로 재계·상류층과 외국자본의 지지를 얻고, 물리력 강화에 기댄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이어진 경제 불황과 만연한 부패·범죄, 네차례 연임한 좌파 노동자당에 대한 염증이 트럼프주의(Trumpism)의 브라질 점령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보우소나루는 한 해 전 브라질계가 많이 사는 미국 플로리다를 방문해 “내가 브라질에서 말하는 것은 이곳의 트럼프와 비슷하다”며 “내가 당선되면 트럼프는 남반구에서 위대한 동맹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대외정책 공약까지 트럼프의 것을 거의 베꼈다. 반중국·친대만, 주이스라엘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유엔 인권위 탈퇴, 기후변화협약 비판,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대한 거친 공격, 브릭스 나라와 거리 두기 등이 그렇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고문 등 과거 군부정권의 억압 행태를 옹호해온 보우소나루이지만 연방의원을 지낸 27년 동안 이념적 지향이 항상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우고 차베스가 1999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된 직후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차베스를 ‘남미의 희망’으로 치켜세우며 그의 철학을 브라질에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차베스는 그때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을 연임한 대표적인 ‘좌파 포퓰리즘’ 정치인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를 가름하는 것은 이념이나 계급, 빈부격차보다 그 사회의 문화가 얼마나 엄격하거나 느슨한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발전한 사회에서는 선동정치가 통하기 어려운 반면 결속력 있는 공동체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우든 좌든 포퓰리즘이 발붙이기 쉽다는 얘기다. 이는 사고의 편향 또는 이념성이 강한 극우파와 극좌파가 상황에 따라 의외로 쉽게 상대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유를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극좌·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불안과 결핍, 좌절감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아 강한 정체성에 대한 요구가 큰 사회일수록 포퓰리즘이 득세하기 쉽다. 또한 강한 정체성을 오래 경험한 사람일수록 포퓰리즘에 거부감을 덜 느낀다. 이는 왜 우파 포퓰리즘이 상승세에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된다. 지금 지구촌은 오랜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여파, 전통적인 선진국과 신흥국·개도국 사이 세력 전이, 기술과 인구구조의 빠른 변화 등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안감이 커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보우소나루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는 트럼프주의의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결합이다. 물론 트럼프나 동유럽 극우 정권의 공약이 그대로 실현되지 않듯이 보우소나루 역시 앞으로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남미 나라들이 그랬듯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현재의 브라질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자유주의를 멀리까지 밀고 간 이명박 정권과 세미파시즘 행태를 보인 박근혜 정권이 그것이다. 두 정권을 합치고 포퓰리즘의 수준을 높이면 내년 1월1일 출범할 보우소나루 정권의 모습이 된다. 이른바 태극기부대는 보우소나루의 열성 지지자들에 대응한다. 우리 국민은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의 파시즘적 행태를 단죄하고 신자유주의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 브라질을 비롯한 지구촌의 시민들 또한 확산하는 우파 포퓰리즘에 맞서려면 그만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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