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루기 위한 협상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초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안 방남이 미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따져봐도 미국 책임이 크다. 관행대로 ‘비핵화 먼저’를 요구하는 완고함과 협상에 공을 들이지 않는 무능력이 큰 장벽이다. 협상 뼈대를 더 튼튼하게 하고 충실하게 내용을 채워가지 않는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성과라고 자랑한 대북 외교가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이란의 경우를 살펴봐도 지금 미국의 대북 접근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드러난다. 트럼프 정부는 잘 굴러가던 이란핵협정을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11월 초 강력한 대이란 제재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그 자체로 잘못이지만, 미국 안에서 기존 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적잖았던 건 사실이다. 이란과 관련해 미국 쪽이 관심을 기울여온 분야는 크게 넷이다. 첫째는 이란 핵 개발 저지다.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를 위해 어려운 협상을 통해 핵협정을 타결했다. 둘째는 중동지역의 정세 안정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생각하는 세력재편 구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란이 팽창주의를 추구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시리아·예멘·레바논 등의 분쟁에 관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셋째는 대이란 관계 개선이다. 두 나라 적대관계의 뿌리에는, 이슬람 신정체제를 수립한 1979년 이란혁명과 1년 2개월여에 걸친 과격 학생들의 미국 대사관 점거 사태가 있다. 미국-이란 관계가 바뀌려면 어떤 식으로든 적대 해소가 필요하다. 마지막은 이란 민주화다. 이 분야를 강조하는 이들은 강력한 제재를 통한 이란 정권(체제)의 교체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핵협정을 파기한 이유로, 이 협정이 첫째 분야에서 미사일 문제를 빼는 등 미흡했고, 둘째 분야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음을 들었다. 셋째 분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넷째 분야는 명시적이진 않지만 강력한 제재와 간접적으로 연계된다. 다수 전문가는 협정 파기를 비판하면서도, 핵 문제를 지역 안정 및 관계 개선 문제와 탄력적으로 결합해 다루는 게 낫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야 핵 문제도 상황 변동에 방해받지 않고 순조롭게 풀 수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 틀은 이란핵협정보다 훨씬 잘 짜여 있다. 6월12일 나온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이를 압축한다. 성명은 북한 민주화를 뺀 세 분야를 함께 비중 있게 거론하면서 방향을 제시한다. 우선 핵 문제에서는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다”(3항)고 밝혔다. 또 정세 안정과 관련해 두 나라가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드는 노력에 참여한다”(2항)고 했고, 두 나라의 ‘새로운 관계 구축’도 약속했다(1항). 모든 것의 전제인 신뢰에 대해서도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분명히 적시했다. 곧 트럼프 정부가 이란핵협정과 관련해 불만을 나타낸 내용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틀을 잘 짰으니 내용을 채워가면 된다. 그 방향은 공동성명에서 밝혔듯이 ‘비핵화-정세 안정(평화체제)-관계 개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동시에 이행하는 것이다. 정세 안정에서는 남북한이 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히 있으며, 이미 9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착실하게 실행되고 있다. 북-미 관계 개선은 거의 전적으로 두 나라의 몫이며, 비핵화도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대북 강경파는 공동성명의 틀 자체를 거부한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은 과거 그대로인데 어떻게 믿나’라는 것이다. 신뢰를 쌓아가며 풀어야 할 사안을 두고, 신뢰가 부족하니 도저히 풀 수 없다고 하는 꼴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그대로’라는 표현은 비핵화가 최종 확인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어떻게 믿나’라는 말도 지금의 북한 체제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의 현재 입장은 이들과 공동성명 사이 어딘가에 있다. 북한은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끌어당기는 만큼 다가오기 마련이다. 북한을 믿을 수 있냐고 할 게 아니라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게 하면 된다. 그 방법이 세 분야 동시이행이다. 29일은 북한이 마지막 핵·미사일 도발을 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북한은 비핵화를 하겠다는데, 왜 이란 경우보다 훨씬 나은 기본 틀을 만들어놓고 동시이행 시나리오조차 만들지 못하는가.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비핵화 협상 ‘큰길’ 벗어난 미국 |
대기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루기 위한 협상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초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안 방남이 미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따져봐도 미국 책임이 크다. 관행대로 ‘비핵화 먼저’를 요구하는 완고함과 협상에 공을 들이지 않는 무능력이 큰 장벽이다. 협상 뼈대를 더 튼튼하게 하고 충실하게 내용을 채워가지 않는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성과라고 자랑한 대북 외교가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이란의 경우를 살펴봐도 지금 미국의 대북 접근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드러난다. 트럼프 정부는 잘 굴러가던 이란핵협정을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11월 초 강력한 대이란 제재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그 자체로 잘못이지만, 미국 안에서 기존 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적잖았던 건 사실이다. 이란과 관련해 미국 쪽이 관심을 기울여온 분야는 크게 넷이다. 첫째는 이란 핵 개발 저지다.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를 위해 어려운 협상을 통해 핵협정을 타결했다. 둘째는 중동지역의 정세 안정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생각하는 세력재편 구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란이 팽창주의를 추구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시리아·예멘·레바논 등의 분쟁에 관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셋째는 대이란 관계 개선이다. 두 나라 적대관계의 뿌리에는, 이슬람 신정체제를 수립한 1979년 이란혁명과 1년 2개월여에 걸친 과격 학생들의 미국 대사관 점거 사태가 있다. 미국-이란 관계가 바뀌려면 어떤 식으로든 적대 해소가 필요하다. 마지막은 이란 민주화다. 이 분야를 강조하는 이들은 강력한 제재를 통한 이란 정권(체제)의 교체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핵협정을 파기한 이유로, 이 협정이 첫째 분야에서 미사일 문제를 빼는 등 미흡했고, 둘째 분야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음을 들었다. 셋째 분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넷째 분야는 명시적이진 않지만 강력한 제재와 간접적으로 연계된다. 다수 전문가는 협정 파기를 비판하면서도, 핵 문제를 지역 안정 및 관계 개선 문제와 탄력적으로 결합해 다루는 게 낫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야 핵 문제도 상황 변동에 방해받지 않고 순조롭게 풀 수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 틀은 이란핵협정보다 훨씬 잘 짜여 있다. 6월12일 나온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이를 압축한다. 성명은 북한 민주화를 뺀 세 분야를 함께 비중 있게 거론하면서 방향을 제시한다. 우선 핵 문제에서는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다”(3항)고 밝혔다. 또 정세 안정과 관련해 두 나라가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드는 노력에 참여한다”(2항)고 했고, 두 나라의 ‘새로운 관계 구축’도 약속했다(1항). 모든 것의 전제인 신뢰에 대해서도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분명히 적시했다. 곧 트럼프 정부가 이란핵협정과 관련해 불만을 나타낸 내용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틀을 잘 짰으니 내용을 채워가면 된다. 그 방향은 공동성명에서 밝혔듯이 ‘비핵화-정세 안정(평화체제)-관계 개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동시에 이행하는 것이다. 정세 안정에서는 남북한이 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히 있으며, 이미 9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착실하게 실행되고 있다. 북-미 관계 개선은 거의 전적으로 두 나라의 몫이며, 비핵화도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대북 강경파는 공동성명의 틀 자체를 거부한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은 과거 그대로인데 어떻게 믿나’라는 것이다. 신뢰를 쌓아가며 풀어야 할 사안을 두고, 신뢰가 부족하니 도저히 풀 수 없다고 하는 꼴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그대로’라는 표현은 비핵화가 최종 확인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어떻게 믿나’라는 말도 지금의 북한 체제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의 현재 입장은 이들과 공동성명 사이 어딘가에 있다. 북한은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끌어당기는 만큼 다가오기 마련이다. 북한을 믿을 수 있냐고 할 게 아니라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게 하면 된다. 그 방법이 세 분야 동시이행이다. 29일은 북한이 마지막 핵·미사일 도발을 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북한은 비핵화를 하겠다는데, 왜 이란 경우보다 훨씬 나은 기본 틀을 만들어놓고 동시이행 시나리오조차 만들지 못하는가.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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