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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17 16:56 수정 : 2018.12.18 12:53

김지석
대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안’ 방남이 사실상 무산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초’로 얘기한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도 잘 잡히지 않는다. 미국은 오히려 인권, 종교 자유 문제 등을 들어 대북 제재를 강화한다.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경의선·동해선 북쪽 구간 공동조사와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22곳 파괴·철수·검증 등 ‘분단사에 획을 긋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으나 비핵화 협상 교착으로 빛이 바랜다.

우리나라의 대외정책 1순위는 항상 북한 문제다. 경제·통상 외교, 한반도 관련국과의 관계 등이 그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남북이 대결에서 대화를 거쳐 협력으로 가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성과다.

트럼프 정부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무역전쟁을 앞세운 대중국 관계가 가장 앞에 있다. 이란 봉쇄를 비롯한 중동 문제, 난민·이민자 대책, 러시아 견제 등이 그다음을 잇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6월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 문제를 최우선 사안으로 꼽은 바 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지난 주말에도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서두를 게 없다”고 했다. 북한의 기를 죽이고 제재라는 고삐를 잘 잡고 있으니 급할 게 없다는 태도다.

지난 한 해 동안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비핵화 관련 논의를 주도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추진력을 만들어내 비핵화 방법의 세부 틀을 짜고 실천에 들어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기존 동력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지난 4월 부임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철저한 ‘트럼프 맨’이다. 트럼프만 바라보고 그의 뜻을 헤아려 움직인다. 북한 문제에서 창의력과 추진력이 약한 것은 그의 책임이 크다. 차관 6명 가운데 4명이 아직 공석일 정도로 국무부의 조직력도 떨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방향을 잡아나가지 않으면 협상이 활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일단 멈춤 상태에서 고심하고 있다. 경제강국과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것은 미봉책이자 고육책이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1·2·3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밝힌 비핵화 원칙에 대해 북한 권력층 모두 흔쾌하게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핵·미사일은 북한이 가진 협상 카드의 거의 전부다. 누가 협상에 나서든 섣부른 제안을 할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위원장뿐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상대의 변화를 요구하며 먼저 움직이길 꺼린다. 냉전식 대결 구조의 타성에다 잘못될 경우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소극성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기다리는 전략’으로는 아무것도 나올 게 없다. 미국에서는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에 시비를 걸고, 북한에서는 더 물러서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커지기 쉽다. 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지면 되돌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장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게 쉽지 않다면, 우리 정부가 고위급 특사 외교를 통해 새 출발을 시도하는 게 한 방법이다. 북한과 미국, 중국에 보낼 특사는 정상들을 만나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답을 받아올 수 있는 급이어야 한다.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안이 있어야 한다. 비핵화에서 어려운 문제는 어떤 것을(비핵화의 내용), 어떤 순서로(단계와 상응 조처), 누가(집행 및 검증 주체), 언제까지(목표 시한)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이 가운데 어느 것에 대해서도 관련국의 입장이 딱 들어맞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와 둘째다. 북한은 어떤 내용의 비핵화를 할지 내놓아야 하고(신고), 미국은 단계별 상응 조처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논의가 갈등 없이 이뤄질 수는 없다. 우리가 외교 역량을 집중해 그 틈을 메워야 한다. 북한과 미국을 한 걸음씩 끌어당겨 손을 잡게 하고 중국이 합의 내용을 보증하도록 하는 기본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느 협상에서나 그렇듯이 신뢰 구축이 핵심 요소다. 당장 시급하지는 않더라도 일본과 러시아의 협력도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의 남북,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동력을 유지해왔다. 자칫하면 이런 노력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공중에 떠버릴 수 있다. 고위급 특사는 정상들 사이에서 신뢰 수준을 높이고 새 토대를 만드는 노력의 하나다. 정상들의 의지에 모든 것을 기대는 게 꼭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 뜻이 없으면 길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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