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북남 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해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자력갱생’은 새롭지 않다. 지난해엔 ‘자력자강’이라는 표현을 썼고, 이전 몇해 동안엔 ‘총공격전’ ‘경제강국 건설’을 얘기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남북 선언 철저한 이행’이 더 두드러진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통해 나라의 앞날을 모색하는 것은 한해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지각 변동이다.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정체 상태인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면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장소를 찾고 있다니 곧 열릴 모양이다. 비핵화-평화체제 협상과 관련해 지난 몇달 동안 분명해진 게 있다. 우선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협상은 계속될 거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국·미국·북한 정상의 의지가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 진전을 자신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당장은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시한이 설정되고 있다. 연례 한-미 군사훈련이 이뤄져온 3~4월이 그것이다. 훈련 방식을 바꾸고 강도를 낮추더라도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그 전에 갈피를 잡아 협상 동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됐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행동을 먼저 요구한다. 이미 상당한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는 북한은 미국의 ‘신뢰성 있는 조처와 상응한 실천 행동’을 앞세운다. 양쪽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다. 불신, 상대에 대한 일방적 판단, 비핵화 경로에 대한 다른 시각 등이다. 그냥 방치한다면 근본 동기에 대한 의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길잡이·중재자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출발점은 9월 평양공동선언의 내용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관련국 전문가의 참관 아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처와 더불어 영변 핵 시설의 영구 폐기’ 뜻을 밝혔으나,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영변에는 북한 핵 시설의 80%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설의 폐기 자체가 비핵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비핵화 대상에는 그 밖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비롯한 다른 핵 시설과 핵무기, 탄도미사일 등이 포함되지만, 영변 시설 이상의 비핵화를 협상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미국은 일단 대북 제재 해제의 물꼬를 트고 나면 전체 틀이 허물어질까봐 걱정한다. 일리가 없진 않으나 자신의 힘조차 믿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다. 비핵화가 중·장기적 과정임을 인정한다면 단계적 상응 조처는 필수다. 신뢰는 주고받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북한이 관련국과 협의해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시작하는 것의 상응 조처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재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다. 두 사업은 대북 제재의 일환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행정조처로 중단됐다. 미국이 동의하면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해제와는 별개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 북한 또한 상당 기간 큰 폭의 제재 해제가 가능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주장한다. 두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현금이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다면 다른 형태의 지급 방식을 논의하면 된다. 중재자 역할을 잘하려면 신뢰 확보와 강한 외교가 필요하다. 남북 협력은 이를 위한 중요한 내용이자 수단이다. 강화된 남북관계가 북한의 행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음을 미국에 납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협상이 원활하게 굴러가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에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불신을 강조하고 비관적인 쪽만을 보는 근본주의자가 상당수 있다. 그 앞에 붙는 ‘냉전’이나 ‘민주’ 따위 수식어에 따라 정치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말이다. 이들은 현상 유지에 머물 뿐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잘 조율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이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칼럼 |
[김지석 칼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부터 |
“역사적인 북남 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해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자력갱생’은 새롭지 않다. 지난해엔 ‘자력자강’이라는 표현을 썼고, 이전 몇해 동안엔 ‘총공격전’ ‘경제강국 건설’을 얘기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남북 선언 철저한 이행’이 더 두드러진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통해 나라의 앞날을 모색하는 것은 한해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지각 변동이다.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정체 상태인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면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장소를 찾고 있다니 곧 열릴 모양이다. 비핵화-평화체제 협상과 관련해 지난 몇달 동안 분명해진 게 있다. 우선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협상은 계속될 거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국·미국·북한 정상의 의지가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 진전을 자신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당장은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시한이 설정되고 있다. 연례 한-미 군사훈련이 이뤄져온 3~4월이 그것이다. 훈련 방식을 바꾸고 강도를 낮추더라도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그 전에 갈피를 잡아 협상 동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됐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행동을 먼저 요구한다. 이미 상당한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는 북한은 미국의 ‘신뢰성 있는 조처와 상응한 실천 행동’을 앞세운다. 양쪽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다. 불신, 상대에 대한 일방적 판단, 비핵화 경로에 대한 다른 시각 등이다. 그냥 방치한다면 근본 동기에 대한 의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길잡이·중재자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출발점은 9월 평양공동선언의 내용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관련국 전문가의 참관 아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 폐기’와 ‘미국의 상응 조처와 더불어 영변 핵 시설의 영구 폐기’ 뜻을 밝혔으나,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영변에는 북한 핵 시설의 80%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설의 폐기 자체가 비핵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비핵화 대상에는 그 밖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비롯한 다른 핵 시설과 핵무기, 탄도미사일 등이 포함되지만, 영변 시설 이상의 비핵화를 협상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미국은 일단 대북 제재 해제의 물꼬를 트고 나면 전체 틀이 허물어질까봐 걱정한다. 일리가 없진 않으나 자신의 힘조차 믿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다. 비핵화가 중·장기적 과정임을 인정한다면 단계적 상응 조처는 필수다. 신뢰는 주고받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북한이 관련국과 협의해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시작하는 것의 상응 조처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재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다. 두 사업은 대북 제재의 일환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행정조처로 중단됐다. 미국이 동의하면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해제와는 별개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 북한 또한 상당 기간 큰 폭의 제재 해제가 가능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주장한다. 두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현금이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다면 다른 형태의 지급 방식을 논의하면 된다. 중재자 역할을 잘하려면 신뢰 확보와 강한 외교가 필요하다. 남북 협력은 이를 위한 중요한 내용이자 수단이다. 강화된 남북관계가 북한의 행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음을 미국에 납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협상이 원활하게 굴러가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에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불신을 강조하고 비관적인 쪽만을 보는 근본주의자가 상당수 있다. 그 앞에 붙는 ‘냉전’이나 ‘민주’ 따위 수식어에 따라 정치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말이다. 이들은 현상 유지에 머물 뿐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잘 조율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이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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