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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7 18:40 수정 : 2006.09.27 18:40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첫째, 한나라당은 과연 유능한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 한나라당이 집권당이었는데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한나라당은 어떤 정책 대안을 갖고 있는가? 둘째, 제1야당으로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대답은 이렇게 나왔다. “우리 때문에 국정이 잘못된 것은 없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추가 질문이 없어서인지, ‘국가부도 사태 책임’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9일 전 같은 장소에서 한나라당 무능론을 들고 나왔다. “지난 10년은 무능한 과거 정권, 즉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저지른 아이엠에프 재앙을 뒷감당한 시기였다.”

김 의장의 한나라당에 대한 공격은 ‘유능-무능 논쟁’을 벌여보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긴 집권여당 대표가 지금 야당과 ‘능력’을 놓고 논쟁을 벌이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 야당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김 의장 스스로 “민주개혁 세력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무능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현정권에 대한 민심은 악화하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까닭은,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 때문이다. 박근혜냐, 이명박이냐도 흥미롭지만, 그보다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과의 권력투쟁에 골몰하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반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절대 반대’가 한나라당이 요즘 하는 일의 거의 전부다. 현정권과 열린우리당이 재집권 의지를 잃도록 만들어, ‘대세몰이’로 정권을 접수하려는 듯한 기세다. 2002년에 김대중 정권과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던 일을 잊었나 보다.


반사이익으로 집권할 수 있을까? 있다. 하지만 집권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국정운영 능력이 부족하면 나라를 또다시 ‘들어먹을’ 수 있다. 그건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뒤 2~3년 동안 ‘로드맵’을 짰다. 충분한 정보와 인력을 가지고도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집권 4년차부터 권력누수(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다. 한나라당도 집권 전에 ‘로드맵’을 잘 짜놓지 않으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노무현 정권보다 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부자들의 정당’이란 이미지가 있다. 혹시 복지예산을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들면, 서민층의 전면적인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한나라당은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민정당의 후신이다. 농민·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순식간에 ‘살인 정권’이 될 수 있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함께가는 희망한국’은 사실상 범여권 세력의 국가운영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헛된 꿈’이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작은 정부, 큰 시장, 감세, 규제 혁파 등 몇 가지 개념만 있을 뿐 전략 보고서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라 사람도 돈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면피’가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지금부터 ‘집권 뒤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무능한 좌파 정권’이라고 현정권을 향해 욕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정책 대안을 내놓고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집권을 해도 뒷말이 없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날로 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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