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2 19:26
수정 : 2012.05.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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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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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위기에 빠졌다. 도덕성에 치명적 하자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진보정당이 보수정당에 비해 능력은 뒤질 수 있어도 도덕적으로는 우월하다고 믿어 왔다.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를 초래한 당 지도부, 선거대책본부장 등 집행부는 다 물러나야 할 것 같다. 그보다는 당장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여부가 더 큰 문제다. 법률적 해법도, 정치적 해법도 찾기가 쉽지 않다. 딱한 노릇이다.
이제 통합진보당은 끝장난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진보정당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진보당이 바로 그 필요한 진보정당이다. 누구보다도 유권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은 4·11 선거에서 지역구 7명(서울 2, 경기 2, 호남 3)과 비례대표 6명의 당선자를 냈다. 지역구 당선자들은 대부분 야권연대 덕을 봤다. 노동자가 많은 울산과 경남에서는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고참 당원인 권영길 의원은 “노동이 없는 진보정치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당연한 걱정이다. 그렇다고 진보정당의 존재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득표율은 10.30%였다. 2004년 17대의 13.03%보다는 낮지만 유권자 열 명 중 한 사람이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다. 독일식 비례대표 선거구제였다면 통합진보당이 전체 의석 300석의 10%인 30석을 차지했을 것이다.
총선 과정에서 보수 성향의 신문들은 통합진보당의 의회 진출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다. 통합진보당이 마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집단인 것처럼 매도했다. ‘경기동부연합’,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출신들이 통합진보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새누리당도 가세했다. 이상일 대변인은 지난 25일 논평에서 서울 관악을 경선 부정과 비례대표 후보 부정선거 의혹을 지적한 뒤, “이런 정당이 19대 국회에서 13석을 차지하게 됐고 표에만 눈이 먼 민주통합당을 소위 연대란 이름으로 사실상 조종하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 때문일 것이다. 총선 뒤 어느 전직 국회의원은 “종북좌파가 13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고 새삼스런 ‘나라 걱정’을 했다. 통합진보당 당선자 중에 종북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 사냥’이 유효하다. 빨갱이 사냥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를 빨갱이로 몰아서 제거하는 것이다. 히틀러가 그랬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독재자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빨갱이가 종북좌파로 용어만 바뀌었을 뿐이다. 보수·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새누리당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을 싸잡아 ‘좌파’ 또는 ‘종북좌파’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내력이 숨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맥락이 달라진다. 통합진보당에서 난 사고는 민주적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위원장의 독선적 리더십으로 똘똘 뭉친 새누리당이 과연 민주적 절차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지금 통합진보당 구성원들 중 상당수는 젊은 시절 공동체의 가치를 개인의 출세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앞당겨졌다. 통합진보당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 시절 동료들이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울 때 개인의 영달을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 공부를 했던 사람들도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기 위해 거듭나야 한다. 이번 사건을 철저히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 정당정치의 기본은 책임이다. 물러설 때는 확실히 물러서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당권파의 소유물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에 표를 찍고 아직도 기대를 걸고 있는 수많은 유권자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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