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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28 19:32 수정 : 2012.05.29 14:42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한다
다른 후보들에게 기회 주고
존경받으며 사는 게 어떨지

 “야권에선 지금 그분이 지지율이 높고 제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존중하고 있다. 집권을 위해 연합정치가 필요하다.”(문재인 상임고문)

 “사회의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손학규 전 대표)

 “정치 참여 여부를 떠나 좋은 쪽으로 이끄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연대는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민주당이 좀더 잘 중심을 잡아야 한다.”(김두관 경남지사)

 민주통합당 정치인들에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악몽’이다. 최근 발언을 들여다보면 매우 심하게 가위눌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는 7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박근혜·안철수 양강 구도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수많은 대선주자들이 자칫 예비후보로 나서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갈 판이다.

 안철수 현상이 출현해서 지속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언론사의 여론조사다. 안철수 원장이 유력 대선후보로 부각된 것은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하면서부터다. ‘대통령 안철수, 서울시장 박원순’이라는 가상 시나리오가 만들어졌고, 각 언론사 대선후보 양자대결 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박근혜 의원을 앞서기 시작했다.

 둘째, 야권 대선주자들의 부진이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미지에 갇혀 있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스토리’가 있지만 ‘텔링’이 되지 않는다. 손학규 전 대표는 능력에 비해 매력이 부족하다.

 셋째, 새로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이다. 1992년 대선의 정주영, 97년의 이인제, 2002년의 정몽준, 2007년의 문국현이 그런 열망을 반영한 ‘제3후보’였다. 야권 주자들의 부진 덕분에 안철수라는 제3후보가 제2후보의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이다.

 넷째, 안철수 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무료로 나눠 주었다. 청춘 콘서트를 기획해 좌절한 젊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내놓았다.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은 흉내내기도 어려운 업적이다.

 그렇다면 그냥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을 하면 안 될까?

 안 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정당을 기반으로 딛고 있는 정치인만이 할 수 있는 자리다. 안철수 원장은 단 하루도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해본 일이 없다. 공적 분야의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거의 없다. 이 시대의 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접촉하는 인물들을 보면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한 것 같다.

 의식에도 좀 문제가 있다. 2004년 안철수 원장이 쓴 책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글을 쓸 때 개인적인 이해타산이 포함되면 안 된다. 10년 전, 20년 전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창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글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믿는다.”

 사고가 역사학자나 철학자를 닮았다. 그래서 위험하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 3월27일 서울대 특강에서 “내가 만약 사회 긍정적 발전 도구로 쓰일 수 있으면 그게 설령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정치를 전공하는 학자에게 이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왕권신수설을 연상케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007년 대선에서 야권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정치를 잘 모르는 문국현 후보가 갑자기 출현해 선거 지형을 왜곡시켰다. 야권은 참패했다. 선거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으로 이어졌다. 지금 안철수 원장의 위치와 2007년 문국현 후보의 위치가 얼마나 다를까?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의 재집권을 원하지 않는다면 대선후보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른 주자들에게 공간이 열린다. 그리고 안 원장도 계속 존경받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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