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만큼만 의석을 가져가면 된다. 승자독식으로 실력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겠다는 사악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선거는 도박이 아니다.
정치팀 선임기자 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조화다. 명분과 이해가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현안이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다. 그래도 명분을 잃으면 안 된다. 연계는 효율적인 것 같아도 위험한 전술이다. 삼국지에는 수전(水戰)에 약한 조조가 배를 묶었다가 화공(火攻)에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적벽대전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내년도 예산안에 선거제도 개편을 연계한 것은 전술적 실패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야당의 예산안 연계에는 확실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시절 야당은 안기부법 개정과 예산안을 연계했다. 국민은 지지했다. 지금은 다르다. 반정치주의에 오랫동안 노출된 국민은 선거제도 개편이 그리 절박하지 않다. 오히려 승자독식 시스템이 ‘내가 싫어하는 놈들’을 혼내주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17대 이후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는 유권자의 이런 심리가 잘 드러난다. 17대 정당 득표율은 열린우리당 38.3%, 한나라당 35.8%였다. 의석수는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으로 벌어졌다. 18·19대는 반대였다. 18대는 한나라당 37.5% 153석, 통합민주당 25.2% 81석이었다. 19대는 새누리당 42.8% 152석, 민주통합당 36.5% 127석이었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엇박자가 가장 심한 국회의원 선거는 2016년 20대였다. 더불어민주당 25.5% 123석, 새누리당 33.5% 122석, 국민의당 26.7% 38석이었다. 정당 득표율 3등의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을 차지한 것이다. 2018년 지방선거 서울시의회 선거 결과도 놀랍다. 더불어민주당의 광역비례 정당 득표율은 50.9%였지만 의석은 전체 110석 중 102석을 차지했다. 선거제도 파동의 출발은 더불어민주당의 변심이었다. 2016년과 2018년 선거 결과를 보고 감격한 의원들이 “우리는 연동형이 아니라 권역별을 약속했다”고 슬쩍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더불어민주당 전략통 의원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2020년 승리의 비책이 있다”고 자신한다.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근거가 별로 없다. 재미있는 것은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다음 선거를 나쁘지 않게 전망한다는 점이다. 근거가 뭘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심판론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후반인 2020년 4월이면 심판론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론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피케이론이다. 부산·경남 민심이 이미 돌아섰다는 것이다. 말은 된다. 모두 다 반사이익이다. 자유한국당은 뭘 하느냐고 물었다. ‘나만 빼고’ 혁신하면 된다고 했다. 참 편리하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권력구조와 같이 논의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실질적으로 의원정수 확대 없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당선 직후라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판세 전망은 ‘다음에는 무조건 내가 이긴다’는 무책임한 낙관론에 ‘승자독식 현행 제도가 나에게 더 유리하다’는 천박한 계산을 결합한 결과다. 도박꾼의 심리와 다르지 않다. 선거제도에 일가견이 있는 여권 인사가 이해찬 대표를 비판했다. 신랄한 표현을 완화해서 전하면 대략 이렇다. “서울에서 민주당이 비례 못 가져가면 영남에서 자유한국당이 비례 못 가져간다. 피장파장이다. 그래도 시베리아에서 고생하는 동지가 되는 게 낫지 왜 서울에서 욕심을 내는지 모르겠다. 이해찬 대표가 1·2번만 달고 선거를 치러서 고민이 별로 없다. 화끈하게 받아야 하는데 잔꾀를 부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집착하는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철을 요구하며 단식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의 결심으로 선거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않는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협상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두 사람도 단식을 풀어야 한다.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 설득은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만큼만 의석을 가져가면 된다. 승자독식으로 실력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겠다는 사악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선거는 도박이 아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shy99@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정치 논평 프로그램 | ‘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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