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_김동연 ‘국회에서의 마지막 한달’
11월4일, ‘후임’ 홍남기 질문에 웃음만
7일, “정치적 의사결정 위기”라며 ‘기름’
8일, 예결위장 앉아 접한 ‘경질’ 보도
12월8일, 예산안 통과되며 마무리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국가 예산을 총괄해 짜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산 심사 도중에 교체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달 ‘전직’ 같은 ‘현직’이라는 애매한 위치로 국회를 오가야 했다. 자신이 “내일 교체된다”는 저녁 뉴스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회의장 맨 앞줄에 앉아 마주해야 했고, 자신의 후임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국회를 연일 활보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계속됐다.
11월4일 ‘후임’ 홍남기 질문에 웃음만
11월4일 김 부총리의 국회 방문은 여러모로 주목받았다. 김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 ‘투톱’ 갈등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 대한 ‘교체 임박’ 보도가 몇차례 나온 뒤인 이날, 김 부총리는 당정협의회를 위해 여당 지도부를 찾아야 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그와 갈등을 빚어온 장하성 실장과 김 부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모두 모였다.
장 실장은 고별사처럼 들리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의 발언에선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경제가 성장하는데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은 커져왔습니다. …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라는 일부의 주장은 한국 경제를 더 큰 모순에 빠지게 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김 부총리는 발언을 아꼈다.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거취 얘기가 계속 나온다”는 질문에 그는 “여러번 밝혔다”고만 했다. “홍 실장과는 얘길 좀 나눴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요?”라고 반문했다. “홍남기 실장이요.” 후임으로 거론되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의 이름이 나오자 김 장관은 웃기만 한 채 국회를 떠났다.
11월7일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며 ‘기름’
본격적인 예산 심사가 시작됐다. 7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인사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 뭐 하실 말씀을 좀 하시지요.”(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김 부총리)
“아니, 의욕이 굉장히 커서 대학 총장을 그만두고 거기 들어가셨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보고 싶었는데 못 하신 게 있을 것 아닙니까?(함 의원)
“제가 지금….”(김 부총리)
“좀 아쉬움이 있는지, 있으면 제가 우리 당 의총을 통해서라도 말씀을 드리려고 그래요.”(함 의원)
“어떤 상황이 생겨도 예산의 마무리는 제 책임하에 마무리 짓겠습니다.”(김 부총리)
덤덤한 말투였지만 ‘조만간 교체’를 사실상 시인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예결위 회의 내내 ‘경제 위기설’에 목소리를 높였다. 공격은 저녁까지 계속됐다.
“고민 그만하시고 결단을 하셔야죠. 고민할 단계입니까, 결단할 때지.”(이장우 한국당 의원)
“경제가 지금 위기라는 말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김 부총리)
김 부총리는 ‘무난하게’ 넘어갈 뻔했던 첫날 저녁,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는 발언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이를 이튿날 1면에 실었다. 갈등설에 기름을 더 끼얹은 셈이 됐다. 기재부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야를 뛰어넘는 협치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자료를 냈다.
11월8일 예결특위장에 앉아 접한 ‘내일 경질’ 보도
8일은 예결특위 경제부처 심사 마지막 날이었다. 9일부턴 김 부총리가 나오지 않아도 됐다. 아슬아슬하게 심사가 마무리되던 가운데, 저녁 8시에 일이 터졌다. <문화방송>(MBC)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 김동연 장관의 후임 인사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뉴스가 뜨자마자 예결특위 회의장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그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엠비시에 내일 후임자가 발표된다고 보도 났는데, 오늘이 국회에서 마지막 발언 하시는 날이 아닌가 싶은데 소감이라든가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한 제언을 주시기 바랍니다.”(권성동 한국당 의원)
“인사에 대해서는 제가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기재부도 있고, 가정법을 써서 말씀드린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금년도 예산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책임지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국회에서 또 뵐 겁니다.”(김 부총리)
예결특위 위원장을 맡은 안상수 한국당 의원이 김 부총리를 쳐다보며 마무리 발언을 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내일 혹시 무슨 보도가 나더라도, 후임 부총리가 오셔도 늘 질문에 말씀하신 대로 끝까지 예산 심의를 잘하시겠다고 그랬으니까, 우리 예산 당국이라든지, 장관님들 잘 협조하셔서 내년 1년 살림을 다 결정하는 거니까, 결국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알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밤 11시30분 산회가 선포되자 국무위원들은 박수를 쳤다. 누구를 향한 박수인지 명확한 표현은 없었지만 다들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
김동연 부총리가 지난 11월13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11월13일 야당과 ‘미묘한’ 분위기
9일, 청와대는 실제 김 부총리의 후임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홍남기 실장이었다. 후임이 정해졌지만 예산안 통과는 책임져야 했다. 13일 다시 국회를 찾았다. 예산 심사 도중 경제부총리 교체는 초유의 일이지만, 야당은 김 부총리에게 직접 날을 세우진 않았다.
“저는 사실 좀 장관님이 오래 하시길 바랐는데요. 사실은 교체를 솔직히 말하면 이런 식의 교체를 하는 건 정말 아닙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소득주도성장을 반대해온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이견을 보여온 김 부총리에게 더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막상 경제 사령탑이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에 대해서 야당으로서도 아주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어 어떻게 풀어주면 되겠는지 한 말씀 해주시죠.”(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예산안을 통과시켜주면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로서는 후임자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바닥을 잘 깔겠습니다.”(김 부총리)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 부총리의 팔을 주무르기도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예결특위 소위가 구성되지 않으면서 심사가 지연됐다. 19일엔 야당을 설득하러 또 왔다. 퇴임 예정자지만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계속됐다.
“청와대가 뭘 급해서 김 장관을 날려가지고 국회를 이렇게 힘들게 만듭니까.”(장제원 한국당 예결위 간사)
“제가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그게 도리고요.”(김 부총리)
“염려가 됩니다. 심각하게 됩니다.”(장제원 간사)
|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안상수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예결특위 간사, 장제원 자유한국당 간사, 이혜훈 바른미래당 간사를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12월8일 예산안 통과되며 마무리
올해 예산안 통과는 유독 진통이 심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이 선거제 개혁과 예산안 통과를 연계시키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김 부총리는 11월30일~12월1일 대통령을 수행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다녀왔다. “예산 심사 막바지에 국회를 비우냐”는 야당의 핀잔을 염두에 둔 듯 그는 지난 3일 귀국하자마자 국회에 왔다.
“지20 참석하고 바로 귀국했습니다. 비행기 갈아타고 바로 왔습니다. 25시간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국회로 왔습니다.”
이튿날인 4일 국회에선 김 부총리의 후임인 홍남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예산안을 둘러싼 ‘꼬인 실타래’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지난 6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야 3당을 배제한 채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곧바로 기획재정부는 예산안 최종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예산안 처리가 예정됐던 지난 7일 오후, 예결특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예산안 통과 전 절차로 2017년 결산 및 2018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의결했다. 안상수 예결특위 위원장은 김동연 부총리를 향해 “김동연 부총리가 처음부터 마음고생 많이 하셨는데 마무리를 잘하셨으니까 박수 한번 쳐주시죠”라며 의원들에게 제안했다. 여야 의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하지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계속됐다. 거대 양당의 ‘몰아치기’에 항의하며 야 3당 의원들은 예산 부수법안 처리를 막으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장을 찾아 회의 진행을 막으며 반발했다. 고함이 무성한 가운데 정성호 기획재정위원장(민주당)은 밤 11시33분 홍남기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을 의결했고, 이튿날인 8일 0시35분엔 예산 부수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새벽 4시30분 예산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 ‘1기’ 경제 수장이던 김 부총리의 공식 행보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문 대통령은 이르면 10일 홍 후보자를 경제부총리에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의 ‘차기 행보’를 두고 여당과 야당에서는 그의 ‘출마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그에게 대놓고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지20 대통령 일정을 수행하던 지난 1일 김 부총리는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현재로선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야당으로 갈 만큼 생각이 얕은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 정치BAR 페이스북 바로가기 www.facebook.com/polibar21 ◎ 정치BAR 텔레그램 바로가기 https://telegram.me/polibar99 ◎ 정치BAR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