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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6 18:26 수정 : 2017.09.06 20:00

결혼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이 묘사한 완전한 시장에서의 상품 거래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두 경제주체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경제적 거래로서만 파악한다. 노동시장의 성별 분업 구조, 일과 가사의 이중 부담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은 결혼경제학이 전제하는 인간관이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한다.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

누리과정 전액 국가책임 공약을 뒤집어 1년 단위로 ‘보육대란’이 발생했던 박근혜 정부가 당시 제시한 저출산 대책 중 상당수는 지금도 ‘웃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초혼 연령을 낮추기 위해 대학 졸업을 2년 앞당기는 학제개편, 대학생의 출산 휴학 2년 보장,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주선하는 남녀 미팅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해 2월 주최한 인구포럼에서 발표한 논문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은 이런 정책들의 경제이론적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논문은 출산율 하락의 근본 원인을 혼인율 하락으로 규정했다. 비혼자의 교육 투자 기간, 비혼 남녀의 파트너 탐색 기간, 결혼시장 이탈자 수라는 3가지 수치를 줄이는 것이 혼인율 제고의 대책들로 제시되었다.

혼인율 하락 원인에 대한 분석을 생략한 채 제시된 3가지 대책에 사람들이 다소 어이없어했다면, 그 대책들의 구체적인 실현 수단으로 예시된 것들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다. 논문은 기업 채용 시에 불필요한 스펙을 가진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정보통신(IT)기술을 활용해 파트너 후보자를 신속 간편하게 탐색할 수 있게 해주며, 배우자에 대한 눈높이를 낮춘 여성들의 행복을 방송을 통해 은연중 보여주자는 안들을 제안했다.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18세기 말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증가 속도를 훨씬 앞지른다는 경제 법칙을 <인구론>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굶주림, 역병, 전쟁 등 과잉인구를 해소하는 자연의 징벌은 이 법칙에서 어느 정도 필연이지만, 그는 인류에 대한 연민을 담은 처방도 내놓는다. 빈민층에 대한 부질없는 자선을 중단해 그들의 책임의식을 고양시킬 것, 경제적 무능자들의 혼인과 성욕을 자제시킬 것 등이었다. 맬서스의 인구법칙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는 “인류에 대한 중상모략”이라고 일갈했다.

맬서스가 관찰한 빈민은 공유지에서 무자비하게 쫓겨났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참하게 퇴락한 역사적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게 그저 식욕과 성욕에 몰두하는 종이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논문에서 분석되고 처방된 비혼자들은 다채로운 색깔의 애정관계, 젠더 간 권력관계,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환경에 대한 감각은 퇴화하고 당장의 경제적 이해에만 전념해 결혼과 출산을 판단하는 경제 동물이다. 위기 분석과 대안 제시의 대상이 과잉인구가 아닌 과소인구라는 차이를 뺀다면, 이 논문을 21세기 한국판 <인구론>이라 부르고 싶다.

어떤 면에서 슬픈 진실의 일단을 포착한 이 논문에 적용된 방법론은 작성자의 창작이 아니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의 ‘결혼경제학’에서 왔다. 결혼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이 묘사한 완전한 시장에서의 상품 거래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두 경제주체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경제적 거래로서만 파악한다. 이런 가정 아래 도출되는 이상적인 가정경제의 모델을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남성은 노동시장에서 전일제로 돈을 벌고 여성은 무보수 가사노동만 전담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정경제의 생산성을 최고로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높은 사회 진출, 노동시장의 성별 분업 구조, 일과 가사의 이중 부담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은 결혼경제학이 전제하는 인간관이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한다. 여성과 그 배우자는 당장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복지정책 한두 개의 유용성보다는 나와 자녀들과 이웃들이 인간답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총체적 직관에 의해 결혼과 출산을 판단한다.

지난달 31일 정부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보육과 육아 지원, 주거·환경 등 복지 확충, 노동시간 단축, 성 평등 의식 제고 등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이슈를 두루 언급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한 정책의 내용은 출산율 하락을 반전시킬 정도의 환경 변화를 기대하기에 너무 미약하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소득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하락했던 서구 유럽의 패턴이 우리라고 예외일 리 없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그 정도를 훌쩍 넘어 위기로 치닫는 시기와 그 시기의 주된 환경 변화에 주목한다면, 출산이 두렵지 않은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변화는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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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장흥배, 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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