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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3 18:13 수정 : 2018.05.03 19:44

경제학의 관점에서 2018년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은 난센스다. 고용계약 어디에도 그들의 꼴불견 거드름, 안하무인의 위세, 신경증적 폭력을 받아줄 의무나 그 경우의 보수에 관한 사항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주류 경제학으로는 고용주의 갑질을 설명할 수 없다.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경제학에서 시장경제는 등가물의 교환 시스템이다. 노동력 상품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고용계약을 맺기 위해서 우선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이 선언은 존 로크가 1689년 ‘내 몸과 정신은 나의 소유’라는 소위 자기소유론을 담은 <통치론>을 발표함으로써 이뤄졌다. 자기소유론은 자연권으로서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을 전개하기 위한 개념 장치였지만, 그 효과에서 봉건 영지에 인신이 예속된 농노들이 자유노동자가 되는 지적 혁명이기도 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2018년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은 난센스다. 고용계약 어디에도 그들의 꼴불견 거드름, 안하무인의 위세, 신경증적 폭력을 받아줄 의무나 그 경우의 보수에 관한 사항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고용계약이 임금의 대가로 노동자의 인격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할진대, 등가물의 교환을 다루는 주류 경제학으로는 한국의 일터에서 일상이 된 고용주의 갑질을 설명할 수 없다.

일단의 경제학자들에게는 자유의사로 고용관계를 맺거나 끊을 수 있는 자유 사회에서 고용주의 계약 외적 지시가 회사 안에서 대체로 관철되는 이유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새뮤얼 볼스와 허버트 긴티스는 경제학에 권력 개념을 도입해 이 수수께끼를 풀었다. 고용주는 피고용인에게 제재를 부과하거나 부과하겠다고 위협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피고용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피고용인은 고용주에 대해 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독창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그들의 사고는 카를 마르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공장 안에서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자본가 권력의 원천이 공장에 대한 자본가의 소유권이라는 것을 큰 수고 없이도 간파했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경쟁에 내재한 기술의 진보가 일자리를 갈망하는 공장 밖의 거대한 산업예비군 무리를 양산하면서 공장 안의 노동을 규율한다는 사실이 약간의 지적인 노력에 의해 덧붙여졌다.

한국 재벌가의 반사회성을 천민자본주의 같은 문화적 요소로 설명하면 기껏해야 “경영인의 인격이 기업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는 훈계가 대안인 것처럼 얘기될 수밖에 없다. 지금 보수언론이 대한항공 사건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그렇다. 이런 훈계가 통했으면 재벌 총수 일가의 인격은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갔을 것이다. 21세기 재벌가의 갑질에 관해서라면 올해 5월로 정확히 200년 전에 태어난 마르크스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나은 설명과 대안을 구하는 길로 보인다.

대한항공을 핵심 계열사로 하는 한진그룹에서 조양호 회장 일가가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면 그들의 그룹 지배권이 봉건영주의 영지 지배권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진그룹은 2013년에 계열사 간 순환출자로 이뤄진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여기서 최근 재벌그룹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자사주의 마법’이 동원됐다. ‘마법’이라는 은유는 은연중 재벌 가문의 신비한 능력을 연상시키지만, 실상은 대한항공이 보유했던 6.76%의 자사주가 저절로 조씨 일가가 의결권을 갖는 주식으로 전환되는 현행 지주회사 규제의 허점에 불과하다.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이와 같은 허술한 규제가 자기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여러 계열사를 그룹에 편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집중된 경제력은 동시에 이런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 정치권력이기도 하다. 대한항공과 별개 회사인 광고대행사의 직원이 그런 수모를 당해야 했던 이유도 몇몇 가문이 지배하는 시장의 눈 밖에 나는 것이 회사의 존속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광고대행사의 직원들은 그들의 현재 직장 바깥에 실업자, 프레카리아트, 3년 안에 거개가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본다.

독일의 경우 노조가 상당한 권한을 갖는 감독이사회와 직장평의회 같은 기업집단 내부의 감시 및 견제 제도를 통해 지배주주나 경영자의 전횡을 견제해왔고, 미국은 강력한 반독점 제도와 기업 외부의 주주 및 소비자에 의한 견제 장치를 통해 그렇게 해왔다. 한국의 재벌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주회사 제도를 개혁해야 하고, 특별히 자사주의 마법은 금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당대에 고민한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갑질 문화에 대해 지금 한마디 보탠다면, 더러운 꼴을 보느니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복지제도도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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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장흥배, 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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