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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3 18:14 수정 : 2018.08.23 19:11

완전고용 가설이 깨진 현재도 사회에서 빈곤 일반을 추방한다는 복지국가의 목표가 여전히 추구할 가치라면, EITC가 최대 규모 공적 소득이전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미국의 빈곤율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교훈적이다.

장흥배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근로장려금은 근로 빈곤층의 노동 의욕 고취와 빈곤 탈출을 목적으로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 지급하는 정부의 현금 지원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근로장려금의 소득, 재산, 연령 기준이 완화되고 가구당 지급액도 대폭 늘려 현행 1조2천억원 규모가 내년부터 3조8천억원 규모로 확대된다. 이로써 근로장려금은 지출 규모에서 공공부조의 근간인 기초생활보장제와 비슷해지고, 수급자 규모에서는 2배에 이르게 된다.

최저임금이 겪는 수난을 생각하면 근로장려금은 복받은 정책이다. 재정 지출 소득이전 정책이 1년 사이 3배 넘게 확대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수미일관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보수세력의 반대도 없다. 노동계와 일부 진보 시민사회의 환영까지 더해졌다. 시급 1만원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 협약으로 보일 정도다.

미국이 1975년 도입한 근로장려금(EITC)은 곤궁한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복지 제공을 노동 참여 조건부로 전환하는 이른바 워크페어(workfare)의 대표 정책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6년 EITC 대폭 확대, 주로 한부모 무직 여성에게 제공하던 공공부조 대폭 축소를 주 내용으로 하는 복지개혁법을 실시했다. EITC는 뉴딜 합의에 서 있던 미국 복지국가의 해체에 중요한 수단이 됐다. 해체할 복지국가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근로장려금의 확대는 정책 결정자들이 그리는 미래의 우리 사회 모습을 가리킨다.

근로장려금은 우선 시장임금을 떨어뜨리는 임금보조금으로 기능한다. 노동 참여 유인이 높아진 저임금 노동자들 사이의 취업 경쟁이 심화하거나 근로장려금을 포함한 총소득에 대한 기대로 인해 노동자의 저임금 노동 수용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ITC 지급액 1달러 중 0.36달러가 사용자 몫으로 간다는 연구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EITC의 시장임금 삭감 효과를 방지할 수단으로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번 근로장려금 대폭 확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2020년 시급 1만원 포기 등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최대한 억누르는 흐름 속에 있다. 저임금 일자리라도 최대한 유지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근로장려금은 감세와 아주 친하다. 미국 EITC의 확대 과정은 감세의 역사였다. 최근 정부의 대대적인 세금 감면을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일시적 경기부양 조치로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로장려금이 공적 소득이전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는 한 조세 정책의 무게 중심은 감세나 저부담 체제 유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빈곤층에 대한 국가의 소득 단계별 정책 접근을 살펴보는 것도 근로장려금의 실체 파악에 유용하다. 1인 가구주는 2019년 최저시급 8350원 기준으로 1개월에 60시간만 일해도 월소득이 50만원을 넘어 기초생활보장제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다. 또한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전일제 노동자는 연 최저소득이 2천만원을 넘어 근로장려금 소득 기준에서 탈락한다. 이는 근로장려금이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를 겨냥한 정책이라는 뜻이다.

기초생활보장제-근로장려금-최저임금으로 이뤄진 3단계 소득 및 빈곤 관리 체계에서 생계급여는 근로장려금이 목표로 하는 노동 참여 유인을 떨어뜨릴 만큼 인상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일하는 대신 기초수급자가 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장려금으로 약간 높아진 시간제 임금 노동자의 총소득은 아무리 높아도 전일제 최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소득 이하로 제한된다. 전일제 노동을 포기하고 시간제로 근로장려금을 받으려는 이가 급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약간의 소득 및 빈곤 개선 효과로 기초생활 수급자를 줄이면서 저임금 노동시장을 유지하려는 근로장려금의 의도가 드러난다.

복지국가는 실업,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한 곤궁을 예방 차원의 사회보험과 구제 차원의 공공부조를 통해 완전히 해결하려는 기획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전체 역사에서 예외적 시기였던, 완전고용이 유지되던 한동안 작동했다. 완전고용 가설이 깨진 현재도 사회에서 빈곤 일반을 추방한다는 복지국가의 목표가 여전히 추구할 가치라면, EITC가 최대 규모 공적 소득이전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미국의 빈곤율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교훈적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근로장려금 대폭 확대에서 약간이라도 수급자들의 소득 및 빈곤 상황을 개선하려는 선의보다 저임금 노동과 빈곤을 관리하고 영속화하려는 의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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