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수익성 판단에 따라 투자를 회피하는 기업의 선택에 대해서는 도덕적 가치판단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최대한 높게 받으려는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여러 공격적인 용어들이 동원되어 가치판단을 한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최근 공개된 논문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는 한국의 성별 소득 격차가 주로 여성의 경력단절에 있고, 따라서 20대에서는 성별 격차가 미미하다는 통념을 검증한다. 소득 격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가정되는 다른 요소들을 배제하기 위해 동일 스펙을 가진 20대 대졸 청년들의 2년 이내 임금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소득이 남성에 비해 19.8% 적게 나왔다. 저자들은 이 격차의 원인을 채용과 부서 배치 등에서 성차별로 돌린다. 논문이 고용시장에서 성차별의 원인까지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논문의 함의는 논문을 소개한 블로그와 언론 기사에 대한 폭발적인 인터넷 댓글 반응을 통해 그 원인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저자들의 논문 소개글에 관한 반론 중, 동일 스펙이더라도 남성의 업무 능력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논문이 합리적인 설계를 통해 비교 대상 그룹의 업무수행 능력을 동등한 것으로 설정한 이상 무시할 만하다. 따져볼 만한 남는 논거들 중에는 시간 외 노동, 힘들거나 어려운 업무에 대한 수용성 등 조직의 요구에 대한 순응도에서 남성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 그리고 기업이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의 미래 손실을 사전에 회피하기 위해 남성을 선호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가 일어나는 이유의 양상은 다양할 것이고, 기업의 남성 선호에 나름의 이유가 없을 리 없다. 그런데 시장의 선택을 강조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시장의 선택이 그 자체로 합리적이거나 자연스럽거나, 혹은 불가피한 이치라는 사고가 깃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법학자 이언 에어스가 1990년대 초 진행한 일련의 조사는 이런 인식의 타당성을 점검해보기에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는 30대 중반에 비슷하게 매력적인 용모와 차림새를 갖추고 대졸 전문직으로 가장한 백인 남성, 백인 여성, 흑인 남성, 흑인 여성으로 나뉜 팀을 꾸려 시카고의 자동차 판매 매장에서 새로 출시된 자동차의 구매자로 연기하도록 했다. 매장의 딜러와 신차의 인상액을 놓고 벌인 할인 흥정의 결과는 백인 남성과 대비해 백인 여성이 40%, 흑인 남성은 2배, 흑인 여성은 3배 더 높은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딜러들의 판단은 시장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 선택은 최대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에나 판매 실적에 따른 보상 체계를 가졌을 딜러들에게는 합리적인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매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는 제도가 없다면 전체적으로 불가피한 시장 메커니즘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의 평등 관념은 이 결과를 시장에서 일어난 명백한 차별로 인식한다. 똑같이 시장 논리에 충실한 시장 참여자의 행위도 참여자의 위치와 지위에 따라 한쪽의 행동은 가치중립적인 시장의 선택으로, 다른 한쪽의 행동은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이중성도 있다. 예를 들어 오직 수익성 판단에 따라 투자를 회피하는 기업의 선택에 대해서는 도덕적 가치판단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최대한 높게 받으려는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여러 공격적인 용어들이 동원되어 가치판단을 한다. 업무 적극성과 조직 순응도의 차이 때문에 동일한 스펙이더라도 기업이 남성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검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일정하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주장은 여성이 남성만큼 적극적인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대개의 차별은 게임의 구조 안에 자리 잡고 있고, 일자리 시장의 게임이 남성의 우위를 구조화화고 있다는 사실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온갖 통계로 증명된다. 기업이 여성의 경력 단절을 예상하여 여성 채용 기피로 대응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사회는 기업의 그러한 선택을 차별로 규정하여 좌절시킬 수 있다. 이 문제에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나은 유럽 각국들의 지표는 그런 노력이 유용하다는 실증이다. 국가와 모든 사회 성원들이 말로는 출산을 세계 최고로 장려하면서도 육아 부담을 국가, 남성, 기업이 분담하는 지표에서는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국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세계 꼴찌 수준이다. 여성들의 장기 출산 파업이야말로 시장의 합리적인 선택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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