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린이들 꿈이 유튜버라고 한다. 10여년 전엔 아이돌이었다. 어른들의 꿈은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주다. 성공한 유튜버와 성공한 아이돌이 모두 건물주가 되는 걸 보면, 결국 한국인의 꿈은 건물주다.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삶의 지향이 건물주인 사회에 혁신은 없다.
사회비평가 ‘혁신’을 원한다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어라, 잠깐. ‘완화’를 잘못 쓴 거 아닌가? ‘강화’ 맞다.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보수언론’, 촛불로 탄생한 정권까지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있기에 그게 정답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 한국은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필요한 규제가 없어서, 규제할 것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기에 ‘헬조선’이 되었다.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천은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선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실패한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생각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 엔지니어나 교육받은 사람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화의 차이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또 실패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것이다.” 통렬하다. 다만, “문화의 차이”라는 말은 조금 부연되어야 한다. ‘패자부활’이 잘 일어나지 않는 건 ‘패자에게 가혹한 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문화의 차이는 대개 교육, 복지, 보상체계 등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좌절한 사람이 다시 도전하려면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대부분 국가나 ‘산업 생태계’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국가가 시민으로서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해주고, 업계는 판 전체를 키우는 차원에서 재도전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두 조건 중 적어도 하나는 충족되어야 혁신적 시도가 계속 나올 수 있다. 한국은 두가지 모두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 복지가 점차 강화되는 건 긍정적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심각한 건 ‘산업 생태계’다. 먼저 진입한 사업자나 재벌 집단이 저지르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때문에, 잠재력 있는 많은 스타트업이 날개 꺾이고 ‘돌연사’했다. 일단 자그마한 성공이라도 거두면, 그때부터는 진입장벽을 높여 신규 진입자를 차단하고 독과점화하는 게 ‘필승전략’이 된다. 재벌은 진입장벽을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생태계 자체를 초토화해버린다. 장사가 될 만한 것은 전부 내부거래로 돌리고, 혁신적인 기술이 스타트업에서 나오면 탈법·편법적으로 훔쳐가버린다. 징벌적 배상제도조차 없기 때문에 재벌의 전횡은 거의 통제 불능이다. 재벌 일가가 심신 미약 수준의 일탈을 저질러야 겨우 사회적 지탄을 받지만, 그렇다고 재벌 지위가 흔들리는 경우는 없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혁신”의 상징인 양 밀어붙이고 있다. ‘메기효과’ 운운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전체 은행의 경쟁력을 제고할 거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은산분리를 유지하고도 얼마든지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생겨났다. 애초 ‘메기효과’ 자체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물론 불합리한 규제는 철폐해야 한다. 그러나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강조하고 지난 정권 시절 결사반대했던 은산분리 규제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손바닥 뒤집듯 부정하고 있는 점이다.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더 황당하다. 이번 안은 “하나 마나 한 수준”이란 평을 들은 재정개혁특별위원회 권고안보다도 훨씬 후퇴한 것이었고, 보유세 실효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다. 최악은 별도합산토지 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한 점이다. 별도합산토지는 대부분 대기업 법인이 갖고 있는 건물의 부속 토지다. 세율을 올려도 생산 투자를 할까 말까 한 현실에서, 사실상 재벌에게 “지금까지처럼 부동산 투기 계속하라” 장려한 셈이다. 지대추구를 정부가 부추기면서 “혁신” 운운하니 설득력이 있을 리가 없다. 요즘 어린이들 꿈이 유튜버라고 한다. 10여년 전엔 아이돌이었다. 어른들의 꿈은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주다. 성공한 유튜버와 성공한 아이돌이 모두 건물주가 되는 걸 보면, 결국 한국인의 꿈은 건물주다.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 삶의 지향이 건물주인 사회에 혁신은 없다. 재벌의 지대추구가 강하게 처벌받지 않는 한, 부동산 불로소득 상승 속도가 근로소득 상승 속도보다 이토록 빠른 한, 혁신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에 뛰어들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지대추구에 대한 규제를 전례 없이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활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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