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치명적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자유한국당이 금세 옛 위세를 되찾긴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김병준·전원책처럼 한다면 1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 이건 한국 사회 전체를 볼 때 좋은 일일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사회비평가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 자유한국당 걱정이지만, 그래도 한명의 시민으로서 ‘보수의 본진’이 어찌 쇄신할지 궁금하긴 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7월 김병준씨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삼고, 10월엔 전원책씨를 조직강화특위 위원으로 들여 “전례 없는 권한을 주겠다” 선언했다. 집도의로 수술방에 들어간 전원책 위원은 메스를 쥐고 비장하게 외쳤다. “욕을 먹더라도 칼자루가 있으니 할 일을 할 것이다!” 처음엔 인적 쇄신을 통해 보수의 미래를 열겠다며 서슬이 퍼??? 그러나 전 위원은 이내 말을 바꿔 “인적 쇄신이 무조건 사람을 쳐내는 건 아니”라고 하다가, 급기야 태극기부대와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분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그룹이므로 제외할 수 없다.” 박근혜 때문에 이 지경이 됐는데 ‘박근혜 무죄’를 외치는 집단과 한몸이 되어 당을 혁신한다? 온전한 정신으로 따라잡기 힘든 발상이다. 이에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직격탄을 날린다. “전원책 변호사는 태극기부대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뿐이라 엄호한다. 김병준 비대위원장까지 태극기부대도 보수라고 규정한다. 태극기부대는 보수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죄가 없고 죄를 지을 수도 없다는, 즉 박통을 수령으로 모시는 개인숭배집단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하 의원은 전원책 위원을 겨냥해 “보수 대공멸의 주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전원책 위원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이렇게 쏘아붙였다. “내가 만약 하태경 의원은 보수가 아니다, 하태경이야말로 트로이 목마, 보수 궤멸의 주범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좋겠나?” 맞다. 아무리 옳은 말도 표현이 독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상한다. 그러니 이렇게 바꿔 부르기로 하자. “전원책은 팅커벨”이라고. 작게 보면 민주당 장기집권 확률을 높인 요정이요, 크게 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요정이라고. 보수의 땜장이(Tinker)로 등장했으되 결과적으로 낡은 우파를 퇴장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다면, 경상도 방언으로 끝없이 떠들어대는 63세 아재를 요정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전원책씨를 콕 집긴 했지만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사뭇 비범한 요정이며 다른 요정들도 상당히 많다. 지금 영등포 자유한국당 당사는 날개 달린 아재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신비로운 요정 마을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박근혜와 완전히 결별하고, 박정희를 현실의 우상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으로 간직하고, 냉전논리를 버리고, ‘공정성’이라는 시대정신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 존재 기반을 흔드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입으로는 정론을 말한 바 있다. 예컨대 10월8일 비대위 산하 ‘좌표와 가치 재정립 소위원회’가 발표한 ‘한국당의 반성·혁신·나아갈 길’을 보자. 4대 가치는 “자유와 민주, 공정과 포용”이고, 4대 가치를 뒷받침하는 6대 혁신가치는 “국가도덕성, 정의로운 보수, 따뜻한 사회, 당당한 평화” 등이다. 구구절절 옳다. 문제는 실천이다. 저 이야기를 하고 며칠 뒤, 전권을 위임받은 조강특위가 한 일은 무엇이었나? 태극기부대 끌어안기였다. 그에 더해 “2012년 비대위가 ‘경제민주화’란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이면서 한국당이 침몰하기 시작했다”며 ‘경제민주화’도 내던졌다. 경제민주화는 공정성 이슈에 직결될 뿐 아니라 부동층에게 보수의 변화를 각인시킨 절묘한 한수였는데, 그걸 버렸다. 말로만 바뀐다고 하면서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치명적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자유한국당이 금세 옛 위세를 되찾긴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김병준·전원책처럼 한다면 1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 이건 한국 사회 전체를 볼 때 좋은 일일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한국당이 지금처럼 해준다는 전제 위에 두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저들 ‘올드라이트’가 주춤한 사이 반난민·반동성애 등의 담론으로 최근 급속히 집결하는 신극우, ‘네오라이트’가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보정당들이 2000년대 민주노동당 이상으로 약진하는 것이다. 정치 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혁은 필수다. 전원책씨를 진정한 민주주의 요정으로 만들기 위해 다 같이 우주의 기운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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