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갈아 넣을수록’ 이윤이 발생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안 하면 바보’다. 대한민국의 자본시장 및 노동시장은 ‘투자자-살인자 체제’다. 이윤을 추구할수록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살인을 피하려고 하면 거꾸로 기업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사회비평가 두 개의 뉴스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먼저 읽은 뉴스는 ‘4조5천억 회계사기 삼성바이오 ‘상장 유지’ 결정’이었다. 한국거래소는 단 한 번의 회의로 ‘상장 유지’를 결정했다고 했다. 거래 정지가 장기화되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강해진다는 점, 유지 결정은 단순히 심사기준에 따른 것이며 분식회계의 면죄부는 아니라는 점 등 친절한 해설도 붙었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다. 상장 폐지가 당연하다는 전문가는 제법 있었지만 실제 그리될 거라고 전망한 이는 드물었다. 2015년 터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는 임원들의 횡령 혐의까지 겹친 최악의 기업 비리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상장 폐지를 피했다. 당시 ‘주식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이들 사건이 언급될 때 단골로 소환되는 사례가 있다. 그 유명한 엔론 사태다. 미국 최고의 에너지 기업으로 꼽히던 엔론의 회계부정이 밝혀지자, 상장 폐지는 물론 회사 자체가 파산했다.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징역 24년4개월 형을 받아 감옥에 갔고, 주주와 채권자들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미국 자본시장의 이런 대처를 보면 왜 한국 자본시장이 신뢰는 고사하고 조소의 대상인지 알게 된다. 다른 하나의 뉴스는, 12월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젊은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참혹하게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실은 같은 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기자회견 자리에서 처음 알려졌다. 정규직이 2인 1조로 하던 야간업무를 하청노동자 혼자 수행하다 일어난 참변이라는 점에서, 2년 전 구의역 19살 노동자 사망사건과 판박이다. 삼성바이오 상장 유지와 젊다 못해 어린 노동자의 죽음.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건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이 동전은 체제의 본질을 외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주주의 이익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익은커녕 생명조차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인력 감축과 외주화가 발표되면 주주·투자자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민영화하고, 노동자를 자르고, 하청을 늘려갈수록 기업의 주가는 상승한다. 물론 기술혁신과 윤리경영으로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그것이 주식에 반영되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런 기업은 유니콘처럼 희귀하다. 한국에선 특히 그렇다. 성장과 이윤 확보는 오랫동안 인력 감축과 외주화의 다른 말이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절체절명의 위험 속에서 일하고, 때로 목숨까지 잃었다. 이것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번드르르한 용어의 실상이다. ‘사람을 갈아 넣을수록’ 이윤이 발생하는데, 별다른 사회적·법적 규제도 없으니 기업 입장에선 ‘안 하면 바보’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잘나가는 어떤 상장기업이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하고 안전관리 비용을 크게 늘리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고 치자.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주주들이 회사로 몰려가 농성할지도 모른다. “왜 쓸데없는 짓 하냐”고 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자본시장 및 노동시장은 ‘투자자-살인자 체제’(investor-murderer system)다. 이윤을 추구할수록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살인을 피하려고 하면 거꾸로 기업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이 체제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 수장이 된 잭 웰치의 전설적인 연설(‘저성장 경제에서 기업의 성장’) 이후, 경영진이 주가와 배당 같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주주가치경영 원칙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그러나 웰치는 28년 후인 2009년, “주주가치는 가장 어리석은 아이디어”였다고 공개 반성한다. 엔론 사태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미국 사회는 단기실적주의가 기업의 발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해가 된다는 깨달음을 점차 공유하게 됐다. 둘째, 이 체제가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입법·사법·행정·언론권력이 모두 썩었지만, 제일 썩은 게 ‘시장권력’이다. 시장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소소하되 확실한 행복은 누군가의 목숨 건 노동과 끔찍한 죽음으로 지탱되어온 것이다. 이 사실을 좀 더 엄중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구조적인 부정의에 대한 집단적 책임의식이야말로 사회를 더 낫게 바꾸는 싸움에 필수불가결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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