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26 17:37 수정 : 2019.09.26 19:55

박권일
사회비평가

몇주 전 <경향신문>이 의미 있는 기획을 시작했다. ‘만사법통에 기댄 사회’ 연속 인터뷰다. 세상만사를 법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경향, 그게 바로 ‘만사법통’이다. 첫 회에서 표절 같은 문화예술 이슈를 법원에 맡기는 세태에 대해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가 이야기하고, 2회에선 사회적 갈등을 검찰이 파헤치는 현상에 대해 금태섭 국회의원이 비판했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도 평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학자다. 그는 법사회학적 관점에서 “온갖 사회관계의 사법화” 특히 “형사범죄화”가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한다. 사회 분쟁을 해결하는 다양한 기제가 있는데 이것을 제쳐두고 검찰이 문제해결을 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깊이 공감한다. ‘선출되지 않고 견제받지 않으며 책임지지도 않는 권력’이 그렇게 팽창하는 일은 자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현상 진단뿐 아니라 원인이나 배경을 두루 살필 필요가 있다. 사회의 사법화의 이유로 종종 지목되는 건 사회갈등 해결 시스템의 기능부전이다. 한마디로 갈등을 해결할 다른 통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법대로”를 외치며 사법 권력에 최종심판자의 역할을 맡기게 됐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고 아마 사실일 게다. 하지만 사회가 과잉 사법화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법의 과잉은 곧, 다른 갈등해결 시스템의 과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저 두 현상은 원인과 결과라기보다 동어반복 내지 동전의 양면에 가깝다.

사법 과잉은 시민의 신뢰가 높아서 나타난 게 아니다. 매년 발표되는 각종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를 보면 맡아놓은 꼴찌는 국회의원이고, 검찰 역시 국회의원과 비슷한 정도로 최하위권이다. ‘기레기’라 욕먹는 언론의 순위가 의외로 검찰보다 제법 높다. 이 중 그나마 법원이 낫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 우위일 뿐이다. 검찰과 법원 모두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그런데 왜 사회의 사법화 경향은 날로 강해지는가.

나는 주리스토크라시(juristocracy), 즉 사법 지배가 이토록 강해진 배경에 크게 세가지 요소가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사법기관 자신의 강력한 권력의지’다. 이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와 정치검찰의 유구한 역사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 모든 사람이 안다. 그가 충성하는 대상이 어디인지를. 저들은 세상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란 말을 가장 정치적으로 잘 써먹는 정치조직이다.

둘째는 ‘선출권력을 유혹하는 정치적 쓸모’다. 소위 ‘대권’을 잡은 정치세력은 한정된 기간 동안 더 강한 권능을 갖길 원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다. 그렇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검찰을 이용한다. 전임 정권의 잔재를 쓸어버리고 새로운 권력 기반을 다지기에 검찰만큼 쓸모 있는 도구는 없기 때문이다. 조국 민정수석 시절 검찰 특수부의 성장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 결과 지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규모가 대검 중수부 시절의 세배를 넘어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휘황했던 권력에 황혼이 내리면, 권력의 개는 이리로 돌변해 자기를 부리던 자를 가차 없이 찢어발길 것이다.

셋째는 ‘메리토크라시’, 즉 ‘능력주의’다. “경기고를 졸업해도 서울대에 붙지 못하면 소용이 없고, 같은 서울대라도 법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이런 잣대의 최정점에 사법연수원 졸업성적이 있다.”(이범준, ‘노무현의 실패, 문재인의 위기’, <경향신문>) ‘시험성적이 곧 능력’이라는 믿음은 ‘법조인’만이 아니라 한국인 절대다수에게 내면화된 신념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시험성적으로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는 신분적 질서를 부여하는 사회다. ‘법조인’의 역량을 신화화함으로써, 그리고 동시에 중립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능력주의는 한국 사회의 사법화를 은밀하게 정당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세가지 요소가 가리키는 바는 또렷하다. 사회를 사법화하는 힘은 강한데 이를 억제할 힘은 너무나 약하다는 것. 엘리트로서의 윤리, 절제,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간청하면 이들이 바뀔까? 그럴 리 없다. 어떤 권력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강력한 제도개혁,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