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원자로 한 기 이상에서 노심용융과 폭발 사고가 났을 때 인근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가? 고리 원전 반경 30㎞ 내에 300만명 넘게 사는 땅에서 그런 정부는 가능한가? 7시간이 아니라 단 1분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면서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상식적인 대통령이라고 해도 원전 사고의 극심한 혼란에 빠르고 공정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달 개봉한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는 재난영화의 뻔한 공식을 답습했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는 규모 6.1의 강력한 지진 때문에 부산 근처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절망적인 과정을 그렸다. 영화잡지 <씨네21>의 박평식 평론가는 <판도라>를 “방사능 먹는 신파”라고 불렀다. 최악의 사태를 불러올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사고를 막아낸 것은 이미 피난길에 오른 가족을 지키려고 죽음을 무릅쓴 이름 없는 기술자들이었다는 상투적인 서사에 대한 비판이었다. “따져보면 <판도라>에 새로운 건 ‘원전 재난’이라는 소재뿐”이라는 평가(<경향신문> 백승찬 기자)는 가족 신파 반대편에 있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컨트롤타워”라는 설정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할 뿐 현장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청와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국적 재난 앞에서도 자신과 조직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긴급한 결정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이런 ‘클리셰’(케케묵은 표현이나 수법)를 지적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뻔한 이야기를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계속 마주쳐왔다는 사실이다.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실패하는 정부, 이를 보다 못해 결국 자기 몸을 던져 가족과 이웃을 살리려는 소시민들. 많은 관객이 <판도라>를 보면서 2014년 4월의 대통령, 해양경찰, 민간 잠수사, 피해자 가족을 떠올렸다. 세월호의 정부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은 <판도라>의 정부를 창의성이 부족한 클리셰가 아니라 참담한 현실의 반영으로 여긴다. 사실 클리셰는 누구나 상식으로 예측 가능한 이야기, 그래서 모종의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세월호에서 한국 정부의 진실을 보았고, 관객들은 그 진실을 <판도라>의 정부에서 다시 확인했다. <판도라>는 원전 사고의 위험을 과학적으로 경고한다기보다는 과연 우리에게 원전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정부가 있는지를 정치적으로 묻는다. 기술시스템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원자력 발전 기술이 그 규모와 복잡성과 군사적 이용 가능성 때문에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운영 조직과 정부를 낳게 된다고 주장해 왔다. 시민들이 권위적인 정부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듯이 원자력 발전을 거부하고 다른 에너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미 상업운전 중인 원자로가 25기나 되는 한국에 필요한 더 실용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정부는 원자로 한 기 이상에서 노심용융과 폭발 사고가 났을 때 이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인근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가? 고리 원전 반경 30㎞ 내에 300만명 넘게 사는 땅에서 그런 정부는 가능한가? 세월호와 <판도라>를 모두 본 사람들은 현재의 정부가 그 일을 해낼 수 없으리라 추론한다. <판도라>를 소재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제작한 동영상에서 장다울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300명도 구하지 못한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어떻게 380만명을 구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공감하면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질문을 해보자. 세월호의 300명을 모두 구하는 시스템을 갖춘 정상적인 정부라고 해도 380만명을 몇 시간 내에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을까? 7시간이 아니라 단 1분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면서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상식적인 대통령이라고 해도 원전 사고의 극심한 혼란에 빠르고 공정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판도라>의 대통령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막을 방법이 없는데…”라며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다. 이것은 더 나은 지도자를 뽑아 정부를 꾸려서 해결할 수 있는 상대적 무능이 아니다. 누구도 타파할 수 없는 종류의 절대적 무능이다. <판도라> 속 무능한 정부의 클리셰는 선의와 노력으로 깰 수가 없다. 원전 사고가 났을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효율적이고 체계적이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정부, 시민 모두가 굳게 신뢰하는 정부, 이해관계를 초월한 정부이다. 이것은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망이 없는, 말하자면 비현실적인 정부이다. 원전에 기대는 것은 곧 기적 같은 정부를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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