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구에 남긴 흔적이 깊고 선명한 현시대를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명명하자는 제안은 국제 지질학계에서 공식 검토 중이다. 인류세의 지표가 될 후보는 여럿이다. 20세기 중반 핵실험으로 곳곳에 퍼진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같은 ‘테크노 화석’, 공장식 축산으로 지구를 뒤덮게 된 닭뼈 등이 있다.
카이스트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인류의 시대’에는 지식을 만들고 나누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10월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인류세 캠퍼스’ 안내문에 나오는 말이다. ‘인류세 캠퍼스’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과학적, 역사적 전환기를 함께 토론하고 교육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2014년 독일 베를린의 ‘세계 문화의 집’(HKW)과 막스 플랑크 과학사연구소가 함께 준비해서 첫번째 ‘인류세 캠퍼스’를 열었고, 2016년 두번째 캠퍼스를 거쳐 올해는 미국으로 옮겨왔다. 인간이 지구에 남긴 흔적이 깊고 선명한 현시대를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명명하자는 제안은 국제 지질학계에서 공식 검토 중이다. 인류세의 지표가 될 후보는 여럿이다. 20세기 중반 핵실험으로 곳곳에 퍼진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같은 ‘테크노 화석’, 공장식 축산으로 지구를 뒤덮게 된 닭뼈 등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사막화, 대규모 멸종도 인간이 만든 세상을 그 이전과 명확하게 구별하게 해 준다. 이 모든 변화는 한 사람이 다 경험할 수 없고, 한 학문 분과가 다 설명할 수 없고, 한 국가가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그래서 ‘인류세 캠퍼스’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자,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였다. 함께 강연을 듣고, 글을 읽고, 토론과 발표를 하고, 전시와 영화를 관람하고, 역할놀이를 했다. 석면과 플라스틱과 그 밖에 인간이 만든 것들이 지구에 쌓이고 스며든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인류세 캠퍼스의 토론 주제는 대체로 답이 없는 것들이었다. 인류세 시대에 지구와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 벼락처럼 갑자기 닥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결정과 행동이 쌓여 천천히 다가오는 재난을 어떻게 포착하고 감당할 것인가, 인류세라는 이름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제되는 목소리는 없는가, 중심과 주변을 구별하는 ‘환경’이라는 개념은 인류세에도 여전히 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유효한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질문은 계속되었다. 인류세 캠퍼스 참가자들이 모색한 것은 지식과 행동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지구가 우리 발밑에 영원히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지구의 일부가 되고 지구를 바꾸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우리는 어떤 지식을 어떻게 만들어서 행동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정보가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을 때, 행동의 결과가 미치는 시공간이 엄청나게 넓고 깊을 때, 알고 보면 ‘우리’가 모두 같은 미래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 인류세를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인류세적 고민’이다. 지난주에 공사 재개를 권고하고 활동을 마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도 이런 인류세적 고민을 품고 있었다. 엇갈리는 정보와 주장 속에서, 몇십년을 따져보는 계산과 몇천년을 내다보는 전망 사이에서,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은 한국만이 아니라 지구에 영향을 미치게 될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결론이 났든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눈앞의 ‘4차 산업혁명’보다는 훨씬 길게 지속될 ‘인류세’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인류세의 증거가 되는 현장에서는 대체로 인간이 영리하게 무엇인가 만들어서 한동안 편리하게 쓰고 돈을 벌거나 위세를 떨친 다음, 기나긴 세월 동안 그 뒷감당을 하며 살아간다. 앞으로 지을 신고리 5·6호기와 얼마 전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와 현재 가동 중인 원전들도 인류세적 시설이다. 신고리 5·6호기는 완공 후 몇십년 동안 전기를 생산하면서 그 몇백배의 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지구에 남기고 인류세 기록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인류세 캠퍼스와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결국 머리를 맞대고 길게 얘기를 해보자는 시도였다. 단숨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이렇게 뻔한 제안이 실험적인 제도처럼 보이는 것은 깊은 성찰과 참신한 선택이 모두 그로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감한 과학적 실험이 촉발한 인류세는 이제 숙의를 위한 사회적 실험을 촉진한다. 대화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것, 인류세의 필수 생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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