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면접에 임하는 구직자의 처지는 인간과 인공지능 관계의 앞날을 미리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공지능과 교감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실시간으로 꿰뚫어 보고 분석하는 인공지능에 잘 보이려 애쓰는 처지가 되어간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이번주에 시작한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는 한달에 일주일씩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나온다. 그 상대역인 남자 주인공은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병에 걸렸는데, 특이하게도 여자 주인공만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알아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내 겉모습이 어떻든 그 속에 있는 존재, 그 아름다움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소박한 환상을 자극하는 드라마다. 예고편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내가 다 알아볼 테니까.”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주는 것이 인생의 큰 기쁨이라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은 기계가 나를 알아봐주는 순간들이다. 기계가 내 두 손을 알아보고 자동 수도꼭지에 물을 흘려주거나 내 몸뚱이를 알아보고 자동문을 열어주는 찰나의 기쁨이 있다. 지문으로 출입문을 열고 얼굴로 스마트폰 잠금을 열 때도 순간적으로 불안과 안도가 교차할 것이다. 기계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불편과 곤경이 뒤따른다. 그럴 때는 카메라나 센서 앞에서 손을 흔들어보고, 앞뒤로 걸어보고, 안경을 벗었다가 써보고, 땀을 닦아보아야 한다. 매일 조금씩 다른 상태인 나를 기계가 알아봐줄 때까지. 얼마 전 보도를 통해 접한 ‘인공지능 면접관’은 ‘인간을 알아보는 기계’라는 주제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서류에 적힌 정보나 자기소개서를 인공지능이 빠르게 읽고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구직자가 카메라 달린 컴퓨터를 통해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질문에 답을 하고 평가를 받는 면접 시스템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계는 나의 몸을 인식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의 능력과 가치까지 알아봐주겠다고 나섰다. 기업들은 인공지능 면접을 통해 더 많은 지원자에게 면접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셀 수 없을 만큼 지원서를 내지만 면접 한번 보기 어려운 구직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수도 있다. 또 채용 과정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요즘, 차라리 기계가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주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이미 비인간적인 행태가 만연한 채용 시장에서 인공지능 면접을 비인간적 도구라고 마냥 비판하기도 쉽지 않다. 인공지능 면접을 거부하고 나를 제대로 알아봐줄 인간 면접관을 요구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구직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보도에 나온 인공지능 면접 프로그램은 지원자가 자기 얼굴을 컴퓨터 화면의 작은 네모 안에 맞추어 넣고 ‘안면 등록’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원자가 자기를 소개하거나 질문에 답을 하는 동안 지원자의 표정과 목소리와 발화 내용이 잘게 쪼개져 실시간으로 분석된다. 인공지능은 지원자가 행복, 놀람, 화남, 경멸 등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파악하고, ‘긍정 단어’와 ‘부정 단어’를 어떤 비율로 쓰는지도 분석한다. 심장이 뛰면서 얼굴색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면접을 마치면 인공지능은 지원자에게 ‘주의력이 좋은’ ‘설득력 있는’ ‘표정이 밝은’ 같은 키워드를 부여하고, 현재 재직자들과 비교해서 그가 앞으로 ‘고성과자’가 될 수 있을지 예측한다. 구직자와 인공지능 면접관 사이의 시선은 비대칭적이다. 구직자는 면접관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면접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인공지능 면접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굴 근육을 움직이고 말투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얼굴색의 변화를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면접 날에는 화장을 짙게 하지 말라는 친절한 조언도 이미 나와 있다. 또 ‘긍정 단어’를 조심스레 고르고 ‘포기하지 않는’이라는 키워드를 부여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 즉 구직자는 인공지능 맞춤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면접에 임하는 구직자의 처지는 인간과 인공지능 관계의 앞날을 미리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공지능과 교감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실시간으로 꿰뚫어 보고 분석하는 인공지능에 잘 보이려 애쓰는 처지가 되어간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를 내보여야 한다. 진심과 가식을 모두 담아 인공지능 앞에 서야 한다. 인공지능이 기업과 국가를 대리하여 “괜찮아, 내가 다 알아볼 테니까”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가, 두려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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