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뉴스와 과학이 비싸고 어려운 것은 대규모의 ‘팩트 체크’ 활동이기 때문이다. 기자나 과학자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사실로 인정받는 경우는 없다. 알려진 사실에 비추어 검증해야 하고, 전문가가 그 절차와 결과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이른바 ‘가짜뉴스’의 정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와 국회가 규제하고 처벌하고 싶어 하는 ‘가짜뉴스’의 ‘가짜’는 무슨 뜻인가. ‘가짜’는 ‘거짓’과 같은 말인가. ‘가짜’는 그에 대응하는 말인 ‘진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또 ‘가짜’를 골라내고 나면 우리는 ‘진짜’를 얻을 수 있는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가짜’라는 단어를 세 가지 뜻으로 나누어 정의한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기본 의미는 “진짜처럼 보이려고 꾸미거나 만들어 낸 것, 또는 진짜와 비슷하게 닮은 것”이다. 원본을 흉내 낸 가짜 그림이나 원본처럼 보이려고 조작한 가짜 문서 등이 이런 정의에 들어맞는 예다. 이때 가짜는 진짜가 아니면서도 진짜에 극도로 가까울 가능성을 담고 있다. 둘째 정의는 “사실이나 진실이 아닌 거짓이나 속임수”이다. 소문이나 광고가 거짓 정보를 담고 있을 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이때 ‘가짜’의 반대말은 ‘진짜’보다는 ‘진실’이다. 이것이 요즘 정치권에서 골라내어 처벌하려는 가짜뉴스에 대한 인식에 가까울 것이다. 조금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가짜’의 셋째 정의인 “진짜답지 못한 것, 또는 원래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이 항목에 등장하는 예문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국민을 현혹시키는 가짜 민주주의다.” “진실을 외면한 채 곡학아세하는 가짜 학자들이 사라져야 이 땅의 학문이 바로 선다.” “가짜가 아닌 진짜 정치인이 많아져야 우리의 정치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 이때 가짜는 겉으로 드러나는 바를 통해 진짜와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라면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덕목과 절차와 의의를 지녔는지 심판받는다. 만약 ‘가짜뉴스’의 ‘가짜’를 이런 뜻으로 해석한다면 ‘가짜뉴스’는 뉴스의 어떤 본질을 배반하고 있을까. 우리는 뉴스가 한 사회를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사실을 발굴하고 검증하고 확산해줄 것을 기대한다. 일종의 믿고 쓰는 공공재로서 여론의 형성과 사회적 의사결정의 합리적 토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뉴스는 과학과 닮았다. 뉴스와 과학은 모두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비교적 잘 확립된 절차를 밟는다. 그래서 뉴스와 과학 모두 시간과 노력과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정치인과 관료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최종 결과물을 놓고 다툴 뿐 사실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제대로 된 뉴스와 과학이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운 것은 둘 다 대규모의 ‘팩트 체크’ 활동이기 때문이다. 기자나 과학자가 새로운 무언가를 한번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사실로 인정받는 경우는 없다. 이미 알려진 사실에 비추어 검증해야 하고, 여러 전문가가 그 절차와 결과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인용과 데이터가 조작된 것은 아닌지, 어떤 결론이 우연히 또는 실수로 도출되었을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대로 된 뉴스와 과학의 힘은 지루한 팩트 체크의 과정에서 나온다. ‘가짜뉴스’의 진짜 위험은 거기 담긴 정보가 거짓이라는 점이 아니라, 클릭 몇번으로 값싸게 조합해낸 정보와 대규모 팩트 체크를 통해 확립해낸 사실을 마치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대상처럼 여기게 만든다는 데 있다.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별하는 능력은 그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거짓말탐지기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확립하기 위해 어떤 원칙과 절차와 노력이 필요했을지 알아보는 눈 같은 것이다. 미국에서 수십년 동안 사용된 거짓말탐지기가 공적 영역에서 거짓말을 줄이는 데 이바지한 바가 거의 없음을 생각하면, ‘가짜뉴스’를 적발하고 처벌함으로써 한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공익은 크지 않을 것이다. ‘가짜뉴스’가 어떤 위기의 징조라면 그것은 특정 정치세력의 위기가 아니라 언론, 과학, 사법부 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실을 생산하고, 검증하고, 공표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각종 제도의 총체적 위기일 것이다. 엄중한 사실을 만들어내야 할 기관들이 사람을 잃고, 예산을 잃고, 신뢰를 잃고 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나온 가짜는 얼마든지 진짜처럼 보일 수 있다. 뉴스든 과학이든 힘들게 얻어낸 사실에 대한 존중, 그 과정에 대한 충분한 투자, 그 공적 가치에 대한 인정만이 가짜를 밀어내고 진짜를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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