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수행 과학’에도 당연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공적 과학의 창의와 혁신은 무엇보다 그 활동의 연속성, 안정성, 신뢰성에서 나온다. 정부가 미세먼지 해결 방안의 하나로 실시한 인공강우 실험은 ‘공무수행 과학’의 모범 사례가 되지는 못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정부가 문을 닫자 과학도 멈췄다.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짓는 예산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가 대립한 끝에 지난해 12월 말부터 35일 동안 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 상태가 되자, 연방정부에서 나오는 예산과 인력으로 돌아가던 과학 활동 대부분이 중단된 것이다. 가령 셧다운은 지난 8년 동안 매주 버지니아주 셰넌도어 국립공원 속을 하이킹하면서 냇물 샘플을 수집하던 생태학자의 작업을 막았다(<사이언스> 보도). 정부기관인 국립공원관리청이 문을 닫으면서 생태학자의 출입도 금지한 것이다. 오래전 산성비로 나빠진 수질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관찰하려는 장기 과제의 데이터에 메꿀 수 없는 공백이 생겼다. 셧다운은 또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지난 10년 동안 비행기를 띄워 레이저로 극지방의 얼음을 관측해온 ‘아이스브리지’ 프로젝트에도 피해를 주었다. <사이언스>는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나사가 문을 닫고 비행기 정비작업에 차질이 생기자 올해의 관측 비행 규모가 절반 이하로 축소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항공 관측 결과와 비교함으로써 작년 9월 발사된 얼음 관측 위성의 정확성을 검증하고 보정하려던 나사의 계획은 틀어졌다. 워싱턴의 정치적 대립 때문에 얼음 데이터를 잃게 된 빙하학자들은 좌절했다.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가 드러냈듯이 정부는 과학의 후원자일 뿐 아니라 과학 활동을 조직하고 실행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정부는 과학자를 고용하고, 그들의 과학 활동이 핵심 역할을 하는 정부 조직을 만들어 운용하고, 그 결과를 활용함으로써 국민에게 안전과 편의를 제공해 정부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는다. 이렇게 정부에 소속된 과학자가 국민을 위해 매일같이 수행하는 과학을 ‘공무수행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화학물질 위험, 생태계 파괴, 미세먼지 문제 등 ‘공무수행 과학’이 다루는 연구 대상은 국가 운영과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공무, 즉 공적인 일로 인정받는 과학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정부에 포섭된다. ‘공무수행 과학’은 노벨상을 받을 업적을 내거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그런 거창한 목표는 과학이라는 공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또 화려한 혁신의 선봉에 서지 않는다고 해서 ‘공무수행 과학’을 만만하고 재미없는 과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과학을 공무로 수행하는 과학자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떤 세력이 여당이 되든 상관없이 날마다 출근하여 측정 기기와 샘플을 확인하고, 모델을 분석하고 수정하고, 지도와 그래프를 만들고, 언론에 현황 분석과 예측 결과를 제공하고, 국민에게 닥친 긴급상황에 대응하는 일을 맡는다. ‘공무수행 과학’에도 당연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공적 과학의 창의와 혁신은 무엇보다 그 활동의 연속성, 안정성, 신뢰성에서 나온다. 지난 1월25일 정부가 미세먼지 해결 방안의 하나로 서해상에서 실시한 인공강우 실험은 ‘공무수행 과학’의 모범 사례가 되지는 못했다. 인공강우 실험 소식을 듣고 여러 과학자가 당황하면서 마치 ‘현대판 기우제’ 같다고 비판한 것은 인공강우 실험 자체의 과학적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실험이 실패했다고 질책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공강우라는 과학적 개념을 미세먼지라는 공적 현안에 연결하는 과정에서 연속성, 안정성, 신뢰성을 갖춘 ‘공무수행 과학’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대통령과 장관이 인공강우를 비롯한 미세먼지 대책을 요구하자마자 서해상으로 비행기를 띄우는 모습은 날마다 돌아가는 미세먼지 예보 조직의 열악한 상황과 대비된다. 2015년 <한겨레>는 “미세먼지팀의 예보 담당 연구원 8명은 통합예보실에서 2인1조가 돼 하루 12시간씩 주야로 교대근무하며 매일 새벽 5시부터 6시간 간격으로 네차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 예보를 내놓는다”고 보도했다. 이후 미세먼지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 4년 동안 과학적 예보를 위한 환경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과학이라는 공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해결책을 빨리 내놓으라는 재촉 대신 전문가들이 안정적으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정부가 믿고 쓸 수 있는 과학 지식이 거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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