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대기과학자이자 얼마 전 나온 <파란하늘 빨간지구>라는 책의 저자인 조천호 박사는 지난주 페이스북에 “공무원을 그만둔 지 1년 좀 넘어 공무원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네요”라고 적었다. <주간경향>과 기후변화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정치적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한 것을 소개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예전처럼 공무원 신분이었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공무원으로서, 특히 ‘과학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행동’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가 ‘과학자’로서 기후와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남다른 무게를 지닌다. 조천호 박사는 또 지난 1월 <한겨레> 온라인판 기고에서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하나로 실시하려는 인공강우 실험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대판 기우제”라고 비판하여 널리 공감을 받았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해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며 미세먼지라는 총체적인 난국에서 과학의 자리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복잡한 문제를 조바심 내지 않고 끈기 있게 해결하는 “진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묵직한 제안이 많은 그의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그가 국립기상과학원을 떠나면서, 그러니까 ‘과학 공무원’을 그만두면서 썼다는 글이다. 그는 국가가 설립한 과학 연구 기관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성과는 우리가 일함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과가 국가 연구개발의 목적이라면, 우린 이유도 모른 채 결과를 만드는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반도와 그 주위의 날씨와 기후를 연구하고 기상재해와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과학 연구 조직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데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조천호 박사가 ‘공무원 감각’을 내려놓으면서 조심스럽지만 또렷이 말해온 것들은 과학과 정부, 과학과 정치, 과학과 세상을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과학자는, 특히 공무원 과학자는 정부와 정치의 일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정부와 정치에 대해 스스로 말하려 하면 과학의 경계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충고나 지시를 받는다.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문제에서 보듯이 과학이 세상을 낫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려면 과학 지식이 정치적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과학 지식을 두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자유롭게 토론해야 하지만 그런 연결 통로는 일선 과학자에게 열려 있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왜 연구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에서 과학자 혹은 과학 공무원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과학과 정치가 근본적으로 얽혀 있는 사안에서도 과학적 발언과 정치적 발언을 분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과학과 정치의 경계가 무의미하다거나, 과학도 다 정치적인 것이니 과학자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과학과 정치에는 각각 고유한 작동 방식과 문화가 있고 그 경계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경계를 제대로 인지하면서 그 위를 더 분주하게, 더 생산적으로, 더 창의적으로 넘어다닐 수 있는 통로와 사람이다. 자기검열을 하거나 직을 걸지 않고서도 지구에 도움이 될 과학, 정부에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과학, 또 과학이 요구하는 정치에 대해 과학자가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선을 넘는 과학과 과학자가 더 많아질 때 경계선 양쪽이 모두 발전한다.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었다. 과학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알려주려는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 ‘과학의 날’은 또한 과학이 이 세계와 지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알리는 날로 삼을 수 있다. 바로 다음날인 4월22일이 ‘지구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의 가능성을 과학이 경고하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도 포함되어야 하겠다. 조천호 박사가 요청했듯이 과학이 지구로 연결되려면 어떤 정치적 행동이 필요한지 토론하는 자리가 열리면 더 좋겠다.
칼럼 |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선을 넘는 과학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대기과학자이자 얼마 전 나온 <파란하늘 빨간지구>라는 책의 저자인 조천호 박사는 지난주 페이스북에 “공무원을 그만둔 지 1년 좀 넘어 공무원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네요”라고 적었다. <주간경향>과 기후변화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정치적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한 것을 소개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예전처럼 공무원 신분이었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공무원으로서, 특히 ‘과학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행동’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가 ‘과학자’로서 기후와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남다른 무게를 지닌다. 조천호 박사는 또 지난 1월 <한겨레> 온라인판 기고에서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하나로 실시하려는 인공강우 실험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대판 기우제”라고 비판하여 널리 공감을 받았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해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며 미세먼지라는 총체적인 난국에서 과학의 자리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복잡한 문제를 조바심 내지 않고 끈기 있게 해결하는 “진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묵직한 제안이 많은 그의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그가 국립기상과학원을 떠나면서, 그러니까 ‘과학 공무원’을 그만두면서 썼다는 글이다. 그는 국가가 설립한 과학 연구 기관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성과는 우리가 일함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과가 국가 연구개발의 목적이라면, 우린 이유도 모른 채 결과를 만드는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반도와 그 주위의 날씨와 기후를 연구하고 기상재해와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과학 연구 조직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데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조천호 박사가 ‘공무원 감각’을 내려놓으면서 조심스럽지만 또렷이 말해온 것들은 과학과 정부, 과학과 정치, 과학과 세상을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과학자는, 특히 공무원 과학자는 정부와 정치의 일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정부와 정치에 대해 스스로 말하려 하면 과학의 경계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충고나 지시를 받는다.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문제에서 보듯이 과학이 세상을 낫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려면 과학 지식이 정치적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과학 지식을 두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자유롭게 토론해야 하지만 그런 연결 통로는 일선 과학자에게 열려 있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왜 연구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에서 과학자 혹은 과학 공무원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과학과 정치가 근본적으로 얽혀 있는 사안에서도 과학적 발언과 정치적 발언을 분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과학과 정치의 경계가 무의미하다거나, 과학도 다 정치적인 것이니 과학자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과학과 정치에는 각각 고유한 작동 방식과 문화가 있고 그 경계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경계를 제대로 인지하면서 그 위를 더 분주하게, 더 생산적으로, 더 창의적으로 넘어다닐 수 있는 통로와 사람이다. 자기검열을 하거나 직을 걸지 않고서도 지구에 도움이 될 과학, 정부에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과학, 또 과학이 요구하는 정치에 대해 과학자가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선을 넘는 과학과 과학자가 더 많아질 때 경계선 양쪽이 모두 발전한다.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었다. 과학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알려주려는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 ‘과학의 날’은 또한 과학이 이 세계와 지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알리는 날로 삼을 수 있다. 바로 다음날인 4월22일이 ‘지구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의 가능성을 과학이 경고하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도 포함되어야 하겠다. 조천호 박사가 요청했듯이 과학이 지구로 연결되려면 어떤 정치적 행동이 필요한지 토론하는 자리가 열리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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