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일본 가나가와현의 한 노인요양기관은 2017년 ‘허그’라는 로봇을 도입해서 6주 동안 시험적으로 운용했다. 정규직과 임시직을 합쳐 직원 37명이 노인 80명을 돌보던 곳이다. 허그는 노인이 로봇을 끌어안듯이 체중을 실어 기대면 로봇팔을 감아 노인을 일으켜 세운다. 인류학자 제임스 라이트는 허그의 도입 과정을 관찰하고 돌봄 직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지난해 논문으로 출판했다. 과연 로봇이 노인을 돌보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허그가 수행하는 노인 ‘일으키기’는 요양기관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다. 노인들은 온종일 침대, 화장실, 목욕실, 거실 사이를 계속해서 이동하고, 그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노인들은 돌봄 직원이 허리를 굽히고 안아서 일으켜줘야 한다. 80명의 노인 가운데 49명이 돌봄 인력의 도움을 받아 이동했고, 이들은 24시간 동안 모두 400번가량 일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사람이든 로봇이든 ‘일으키기’ 작업을 하루에 400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을 일으키는 일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 몰려 있었고, 이로 인해 돌봄 직원들은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복대를 차기도 하고 진통제를 먹기도 하면서 일했다. 허그 도입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돌봄 직원들은 노인을 일으키는 일상적 행위에 허그를 사용하는 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선 로봇을 작동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이 꽤 많이 들었다. 허그가 노인을 한번 일으키려면 90초 정도 걸렸다. 바쁘게 돌아가는 돌봄 일과 중에 로봇을 작동할 시간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 로봇을 사용하는 것이 노인들에게 ‘실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돌봄이란 ‘인간 대 인간’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하므로 내 몸 대신 로봇으로 노인을 일으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그에 대한 논문을 다시 꺼내 읽은 것은 <한겨레> 권지담 기자가 쓴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허그 도입을 고려하게 만든 허리 통증과 부상은 권 기자가 한달간 요양보호사로 일한 한국 요양원에도 똑같이 있는 문제다. 권 기자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70㎏이 넘는 노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다 허리를 삐끗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 요양보호사 2명이 각각 노인의 겨드랑이를 어깨에 걸치고 양쪽에서 들어 올린 뒤 휠체어에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했다”고 기록했다. 이곳에서도 일본처럼 허그 로봇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기사를 읽어나가다 보니 로봇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가나가와 요양기관의 로봇 도입 실패기는 한가한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37명이 노인 80명을 돌보면서 일과가 바빠 로봇 사용이 어렵다거나 로봇이 노인에게 ‘실례’가 된다는 말은 사치스럽게 들린다. 법에 따르면 노인 다섯명당 요양보호사 두명이 있어야 하지만, 권 기자가 일한 요양원에서는 노인 28명을 세명이 돌볼 때도 있었다. 권 기자는 한달 동안 자신이 한 일이 ‘돌봄’이 아니라 ‘처치’였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잘 돌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로봇 때문에 사람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없어 로봇을 활용할 여유도 없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요양원에 허그 같은 로봇을 도입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돌봄 노동을 기계적, 비인간적 행위로 강등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계적인 ‘처치’ 과정이 로봇의 느린 움직임 덕분에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리듬을 회복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로봇을 준비하고 작동하는 동안 잠시 노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다. 한국의 요양 현실에서 로봇은 노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돌봄 인력을 돌보기 위해 도입돼야 할지도 모른다. 마침 지난 월요일 국립재활원은 ‘돌봄 로봇 심포지엄’을 열고 권 기자와 노인 및 장애인 돌봄 당사자들을 초청해서 ‘돌봄의 어려움’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국립재활원에서 추진하는 돌봄 로봇 사업을 소개하는 자리기도 했다. 로봇을 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적 조건을 갖추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적어도 현장에 로봇을 작동할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칼럼 |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돌봄 로봇은 누구를 돌볼까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일본 가나가와현의 한 노인요양기관은 2017년 ‘허그’라는 로봇을 도입해서 6주 동안 시험적으로 운용했다. 정규직과 임시직을 합쳐 직원 37명이 노인 80명을 돌보던 곳이다. 허그는 노인이 로봇을 끌어안듯이 체중을 실어 기대면 로봇팔을 감아 노인을 일으켜 세운다. 인류학자 제임스 라이트는 허그의 도입 과정을 관찰하고 돌봄 직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지난해 논문으로 출판했다. 과연 로봇이 노인을 돌보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허그가 수행하는 노인 ‘일으키기’는 요양기관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다. 노인들은 온종일 침대, 화장실, 목욕실, 거실 사이를 계속해서 이동하고, 그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노인들은 돌봄 직원이 허리를 굽히고 안아서 일으켜줘야 한다. 80명의 노인 가운데 49명이 돌봄 인력의 도움을 받아 이동했고, 이들은 24시간 동안 모두 400번가량 일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사람이든 로봇이든 ‘일으키기’ 작업을 하루에 400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을 일으키는 일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 몰려 있었고, 이로 인해 돌봄 직원들은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복대를 차기도 하고 진통제를 먹기도 하면서 일했다. 허그 도입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돌봄 직원들은 노인을 일으키는 일상적 행위에 허그를 사용하는 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선 로봇을 작동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이 꽤 많이 들었다. 허그가 노인을 한번 일으키려면 90초 정도 걸렸다. 바쁘게 돌아가는 돌봄 일과 중에 로봇을 작동할 시간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 로봇을 사용하는 것이 노인들에게 ‘실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돌봄이란 ‘인간 대 인간’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하므로 내 몸 대신 로봇으로 노인을 일으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그에 대한 논문을 다시 꺼내 읽은 것은 <한겨레> 권지담 기자가 쓴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허그 도입을 고려하게 만든 허리 통증과 부상은 권 기자가 한달간 요양보호사로 일한 한국 요양원에도 똑같이 있는 문제다. 권 기자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70㎏이 넘는 노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다 허리를 삐끗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 요양보호사 2명이 각각 노인의 겨드랑이를 어깨에 걸치고 양쪽에서 들어 올린 뒤 휠체어에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했다”고 기록했다. 이곳에서도 일본처럼 허그 로봇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기사를 읽어나가다 보니 로봇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가나가와 요양기관의 로봇 도입 실패기는 한가한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37명이 노인 80명을 돌보면서 일과가 바빠 로봇 사용이 어렵다거나 로봇이 노인에게 ‘실례’가 된다는 말은 사치스럽게 들린다. 법에 따르면 노인 다섯명당 요양보호사 두명이 있어야 하지만, 권 기자가 일한 요양원에서는 노인 28명을 세명이 돌볼 때도 있었다. 권 기자는 한달 동안 자신이 한 일이 ‘돌봄’이 아니라 ‘처치’였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잘 돌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로봇 때문에 사람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없어 로봇을 활용할 여유도 없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요양원에 허그 같은 로봇을 도입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돌봄 노동을 기계적, 비인간적 행위로 강등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계적인 ‘처치’ 과정이 로봇의 느린 움직임 덕분에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리듬을 회복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로봇을 준비하고 작동하는 동안 잠시 노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다. 한국의 요양 현실에서 로봇은 노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돌봄 인력을 돌보기 위해 도입돼야 할지도 모른다. 마침 지난 월요일 국립재활원은 ‘돌봄 로봇 심포지엄’을 열고 권 기자와 노인 및 장애인 돌봄 당사자들을 초청해서 ‘돌봄의 어려움’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국립재활원에서 추진하는 돌봄 로봇 사업을 소개하는 자리기도 했다. 로봇을 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적 조건을 갖추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적어도 현장에 로봇을 작동할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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